[오션 뷰] ‘러스트 벨트’와 부울경의 운명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전 세계 이목을 끌었던 미국의 59번째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치열한 접전 끝에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면서 선거의 핵심 승부처로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이 크게 부각되었다. 러스트 벨트 지역이란 미국 내 오대호 인근과 북동부 지역의 과거 공업지대를 일컫는다. 과거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산업공동화가 진행되면서 공장 설비가 부식되어 녹(rust)이 슬게 된 지역이다. 이 지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피츠버그 인근의 철강 산업,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시켰다. 미국을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 역사의 주변국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패권 국가로 발돋움하게 했던 지역이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국 내 절반에 가까운 생산량과 고용을 창출하던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미국이 전 세계 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다. 결국 미국의 러스트 벨트는 전 세계 생산의 25%를 차지하며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지역이었던 것이다.

1941년 12월 일본이 선전포고 없이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선제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해 진주만을 폭격할 때였다. 일본군 연합함대 야마모도 이소로쿠 사령관은 본인이 주도하던 침공 와중에도 미국의 국력과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불안으로 “잠자는 사자를 깨웠다”라고 진주만 폭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 우려는 정확한 것이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감행된 진주만 폭격은 미국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전 국민적 분노를 바탕으로 미국은 전통적 대외정책인 ‘먼로주의’라는 미국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2차 세계대전을 총력전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미국의 총력 참전으로 2차 세계대전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되었으며, 그 이후 연합군의 승리는 시간문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미국, 세계 공장으로 변모시킨 주역
남부로 산업 중심지 이동되며 쇠락
부울경 유사한 위기 요인 있어 주목
첨단산업 재배치·자체 혁신 등 절실

즉 당시 일본과 독일 패망의 결정적 원인은 미국의 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었다. 예를 들면 당시 최강국이었던 영국도 2차 세계대전 중 전선에 동원되는 수송선 건조에 영연방 및 주변 국가들의 지원으로 1500만t 정도의 생산에 그쳤으나, 미국은 같은 기간 미국 내에서만 2500만t 이상의 수송선을 건조하여 전선에 투입하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미국의 국력은 세계를 압도하였고, 그 압도적 국력의 바탕은 바로 지금 쇠락해버린 러스트 벨트 지역의 생산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시키고 세계 패권국가로 발돋움시켰던 지역이 어떻게 해서 쇠락하여 러스트 벨트로 전락하여 버린 것인가. 그 원인과 쇠락 과정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미국 경제학계의 핵심 쟁점이었다. 필자가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학위 과정에 있던 미국 유학 시절을 회고하면 당시 미국 경제를 전공하던 경제학도들 가운데 러스트 벨트의 쇠락과 남부지역의 ‘선벨트(sun belt·미국 남부 주)’ 지역으로 미국 경제의 중심지 이동을 주제로 연구하던 학자들은 대부분 경제학계에서 우대받았고, 여러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스카우트하고 있었다.

러스트 벨트 쇠락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다음 3가지를 주된 원인으로 판단한다. 첫째, 전통적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 상실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철강·자동차·조선 등 전통 제조업에서 독일·일본 등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기술력과 생산성 제고로 인하여 미국의 경쟁력 우위가 상실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곧 미국 내 러스트 벨트 지역의 산업공동화로 이어졌다. 둘째, 산업 전환기에 항공·전자·군수 등의 첨단산업이 미국 내 남부의 선벨트 중심으로 발전되어 산업 중심지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기존 산업, 특히 자동차산업 역시 노동의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노동윤리가 비교적 뛰어난 남부 농업지역으로 이전이 점차 가속화되어 산업공동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부울경 지역은 오랫동안 조선·자동차·기계·화학 등 우리나라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며,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견인한 지역이다. 현재도 조선업 등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미국 러스트 벨트의 쇠락을 초래한 요인들이 부울경에도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조선·기계 등 전통 제조업에서 중국의 경쟁력 제고가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소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부울경 지역이 미국 러스트 벨트의 길을 걸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국토 불균형 발전과 수도권 집중화는 이미 감내 불가능한 지경에 와 있다. 미국 러스트 벨트 전통 제조업의 쇠락 과정과는 달리 부울경 제조업의 기술력과 생산력 고도화, 국내 첨단산업의 재배치 등 정책적 노력과 아울러 기업들의 자체적 혁신이 부울경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