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토로 강경남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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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마을. 1940년대 초 교토비행장 토목공사가 한창일 때 그곳엔 1300여 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살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이 되었지만,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렇게 눌러앉은 조선인들이 공터를 닦아 무허가 정착촌을 이루었다. 고생, 고생,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과 일본의 차별에 시달렸다. 우토로에 상하수도가 보급된 게 1988년이었으니, 딱한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우토로는 그렇게 재일동포 차별의 상징이 되었다.

강경남 할머니는 우토로의 마지막 자이니치(在日·일본에 사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 1세대다. 그가 지난 21일 저녁 향년 95세로 영면했다. 경남 사천 태생의 고인은 여덟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비행장에서 일하문 안 잡아간다 캐서” 남편과 오빠, 아버지가 우토로에서 먼저 자리 잡고 일했다. 오사카에 있던 강 할머니는 나중에 시어머니와 함께 우토로에 합류했다. 그렇게 70여 년 세월을 우토로에서 보냈다. 우토로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만하다.



4년 전 우토로 마을을 찾았을 때 강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90대 초반의 연세에도 너무나 정정했다. 올해 들어서 건강이 안 좋아지긴 했지만, 지난여름만 해도 반짝 좋아져서 외출하실 정도였다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 엊그제 부음을 받고 “고향 사천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 울컥했다. 강 할머니를 돕고 싶다는 부산의 독지가도 두어 분 나서서 고향 방문을 추진했더랬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는 동안 선택의 여지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우토로에 모여들어야 했던 건 강 할머니뿐 아니다. 유일한 1세대 생존자였던 분의 죽음이기에 더 애달픈 것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강 할머니는 시민단체와 한국 정부 등이 마련한 우토로 사람들의 새 보금자리에 2018년 일단 입주했다가 도로 나왔다. 이전에 살던 낡은 집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다. 덕분에 평생을 살았고, 떠나기 싫어했던 그 집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지금 우토로에선 내후년 5월 개관 예정으로 ‘평화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이제 우토로의 생생한 역사는 그곳에서나 마주할 수 있으려나 싶다. 강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부디 하늘나라에선 경남 사천 용현면 고향 땅이라도 굽어보시면 좋겠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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