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앙부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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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금 세종은 고대의 성군 요(堯)와 순(舜)을 따르려 했다. 요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바탕으로 책력을 만들었고 순은 그를 다듬어 칠정(七政·해, 달, 수성, 화성, 목성, 금성, 토성)의 운행 법칙을 관찰하는 기구인 선기옥형(璇璣玉衡)을 고안했다.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돌봐야 하는 존재라 항상 천문을 살펴야 했다.

하지만 세종으로선 실행할 기틀이 없었다. 당시 중국의 관상수시(觀象授時·하늘을 관찰해 백성에게 때를 알림) 방법은 오차가 심하고 사용이 불편했다. 그때 나타난 이가 이순지(1406~1465)였다. 장영실이 기술자였다면 이순지는 이론가였다. 양반 문신이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산학(算學)은 물론 천문, 음양, 풍수에 두루 능했다. 그는 서양의 코페르니쿠스보다 100년 앞서 지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날 세종이 신하들에게 한양의 북극고도(北極高度) 값을 물었다. 20대의 젊은 이순지가 “38도 강(强)”이라고 답했다. 북극고도는 지금의 위도에 해당한다. 당시 계산법으로 ‘38도 강’은 지금 서울의 위도(37.5도)에 근사한 값이다. 세종은 이를 의심했는데, 중국 사신이 역서를 바치면서 한양의 북극고도가 ‘38도 강’이라고 알려주자 이순지를 크게 신임하게 됐다.

세종은 꿈꿨던 바 ‘조선의 천문역법’ 사업을 이순지에게 일임했고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세종실록>은 ‘지금의 간의(簡儀)·규표(圭表)·태평(太平)·현주(懸珠)·앙부일구(仰釜日晷)와 보루각(報漏閣)·흠경각(欽敬閣)은 모두 이순지가 이룬 것’이라고 기록했다. 조선 과학의 결정체라 일컬어지는 각종 천문기구와 시계 등이 모두 이순지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그중 하나인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르는 가마솥에 비치는 해 그림자로 때를 아는 도구’다. 단순히 시각만이 아니라 절기, 일출일몰, 방위까지 알려주는, 당시로선 첨단 기기였다. 국내에 7점 외국에 4점 남아 있었는데, 미국에 있던 것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경매를 통해 환수했다. 보물로 지정된 국내의 2점보다 미적 가치가 훨씬 크다고 한다.

현재로선 부산에서 그 아름다움을 직접 감상할 수는 없다. 다음 달 20일까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만 공개하기 때문이다. 지방에 사는 설움을 이런 데서도 느껴야 하나 싶지만, 국립고궁박물관 ‘온라인 전시관’(https://www.gogung.go.kr/onlineExhibition.do)에서 특별공개전이 열리고 있어 다소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는 있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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