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차별 없애려면 ‘대학 안 가도 되는 사회’부터 만들어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나는 '대학민국 고졸'이다 - 하

뿌리 깊은 한국사회의 학력 간 차별과 격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합리한 하청 관계와 대학 서열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촉발한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을 잣대로 들이대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독일에서는 학력 간 임금 격차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40세 전까지는 고졸자의 임금이 대졸자보다 높다. 독일 청소년의 삶의 질과 행복감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 한국 학생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불합리한 사회구조적 요인 탓
독일은 고졸자 임금이 더 높아
학벌 대물림 계층 고착화 심화
대학 입시 없애 교육 정상화를
“학생들이 부당한 현실 맞서야”


■ 학생 재능·소질 발굴은 여전히 뒷전





서울 인덕과학기술고등학교 이강은 교육연구부장. 그는 자동화기계과 교사로, 학생 진로에 관심이 많아 2010년부터 학과 내 진로교육을 맡고 있다.

이 교사는 지난 10년간 진로지도 교사로 일하며 우리 교육이 학생의 재능이나 소질을 이끌어 내는 데 소홀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또 고졸 취업자와 대졸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학벌 사회’를 지속적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보고 있다.

“서울에서는 재능을 좇아 특성화고에 오는 학생이 좀 늘었지만, 지역에선 아직까지 저조해요. 중학교 단계에서 학생 진로교육이 전혀 안되고 있습니다. 아직 학력중심 사회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반면 산업현장에선 고졸 출신이 오히려 대졸보다 업무 능력이 우수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경영자총협회 심상균 회장은 “솔직히 중소기업의 대졸 직원 가운데 고졸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며 “고졸 직원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대기업 A사 인사담당자는 “고졸 직원 대부분이 나이가 어려서인지 패기가 넘치고 업무 추진력이 상당히 좋다”고 밝혔다.



■ 고졸은 벤츠, 대졸은 골프 타는 독일




독일의 상황은 한국과 정반대다.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는 귀를 의심할 만한 독일 학교 이야기를 들려줬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세계에 뛰어든 사람을 ‘아추비(Azubi)’라고 해요. 그리고 대학 가는 학생을 ‘아비’라고 합니다. 아비라는 게 독일 고교졸업시험 ‘아비투어(Abitur)’를 말해요. 그런데 한 40세 이전에는 아추비가 아비보다 수익이 좀 높아요. 그러니까 독일에서 ‘아추비는 벤츠 타고, 아비는 골프 탄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김 교수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설명했다. 독일 학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걱정을 한다고. 그는 “독일에서 대학 간다는 건 미래가 불안정한 학자나 예술가가 된다는 의미”라며 “만약 교사가 학부모에게 ‘이 아이는 책 읽는 걸 좋아하니 김나지움(Gymnasium·독일 중·고교 과정) 보내서 아비투어 보게 하세요’라고 권유하면 대부분 부모가 걱정을 한다. 자녀가 굶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 노력으로 학벌 따는 시대는 끝?

한국의 고졸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현실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 체계와도 닿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학벌 대물림 현상이 강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계급이 됐다는 점. 김 교수는 “중산층 사회에서 학벌 세습이 나타나고 있다. 기득권 계층이 더 좋은 학벌을 얻는 게 고착화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런 폐단을 뿌리 뽑기 위해 대학 입시를 없애고, 독일의 아비투어처럼 자격시험으로 전환해 학생들이 일정 점수만 받으면 모든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학 서열을 없애 야만적인 경쟁 교육을 뿌리 뽑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학서열을 해소하면 ‘하향 평준화’된다는 주장에도 손을 내저었다. 독일도 68혁명 이전에는 경쟁교육 체제였지만, 1970년 교육개혁 이후 우려와 달리 양질의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 개혁 이후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가 더 늘었다고 한다. 독일은 2019년 기준 노벨 과학상(물리학·화학·생리의학) 수상자를 70명이나 배출했다.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경쟁 교육을 시키는 한국은 현재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다. 김 교수는 “경쟁 교육 안 하면 하향 평준화된다는 주장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거짓말’이다”고 단언했다.



■ 남포동·서면에서 촛불을



이강은 교사는 학력 간 임금 불평등이 ‘대기업 우선주의’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대기업이 너무 많이 가져가서 중소기업의 노동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하청 구조가 고질적인 문제다”며 답답해했다.

이 교사는 “일본 같은 경우에는 고졸자 취업이 거의 100%다. 고졸자 임금이 대졸과 거의 비슷해 굳이 대학에 안 가려고 한다”면서 “호주도 기술을 가지고 자기가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풍토가 정착돼 있다. 모두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우리도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누리 교수는 한국의 고질적인 대학서열 문제, 학력·학벌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이자 최대 피해자인 학생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의 68혁명을 들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휩쓸면서 소르본이라는 엘리트 대학을 해체했고, 지금 파리의 모든 대학은 평준화된 상태다.

그는 “우리 아이들도 부당한 현실에 맞서 스스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며 “여기에 교사와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남포동이나 서면에서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하·박세익·이승훈 기자

hsh03@busan.com



※더 많은 기사와 영상은 busan.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