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만 있었다면… 4층만 높았다면…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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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6시 55분 부산 금정구 부곡동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나 1명이 숨졌다. 부산소방 제공

“아, 4층만 더 높았더라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아닌 구축 아파트 저층 세대에서 불이 나 사망자가 발생했다.

24일 오전 6시 55분 부산 금정구 부곡동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났다. 안방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로 안방에 있던 40대 남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집 안에는 고등학생 아들이 함께 있었지만 아들도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부곡동 아파트 화재 40대 숨져
12층이지만 스프링클러 없어
‘전층 설치’ 법 바뀌기 전 준공
오래된 저층 아파트 ‘사각지대’

화재로 긴급대피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주민 15명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불은 A 씨의 집 안방과 거실 등을 모두 태운 뒤 1시간여 만에 완전히 꺼졌다.

화재 당시 집에는 A 씨와 아들, 두 사람만 거주 중이었다. A 씨의 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새벽에 잠을 자다 깨 보니 거실에 연기가 자욱했고, 안방 문을 열었으나 불길이 너무 거센 데다 아버지를 불러도 대답이 없어 손을 쓸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불이 난 이 아파트 12층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6층 이상 공동주택은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소방시설법이 개정되기 전인 1995년 준공됐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1992년 처음 제정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16층 이상에만 의무화해, 같은 아파트지만 15층 아래로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됐다. 2005년 공동주택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법안이 개정됐지만 이 개정안마저도 전체 층수가 11층 이상일 경우에만 해당됐다. 6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때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현실성 있게 법안이 강화된 건 불과 2년 전인 2018년이다.

이에 소방시설법 사각지대에 놓인 구축 아파트의 저층 가구는 여전히 스프링클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산시와 소방당국은 아파트 스프링클러 설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는 소방당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소방당국은 건축허가와 관련돼 있어 파악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한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측은 “건축주가 자진해서 설치하는 경우도 있고, 공동주택이 워낙 많다 보니 설치율을 파악하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이날 오후 현장 정밀 감식을 실시했다. 경찰은 A 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사망 시점 등을 밝히기 위해 부검도 실시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으며, 방화 등의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다만, 화재로 인한 사망인지 등을 확실히 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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