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넌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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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엄마들을 TV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아 왔다. 하지만 영화 ‘런’의 엄마는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딸을 보살피고 돌본다는 이름 아래 보이는 집착과 광기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2018년 ‘서치’로 혜성처럼 나타나 주목받은 아니쉬 차간티라는 감독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증발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데이빗’은 딸의 PC, 아이폰, 메신저, 유튜브, SNS를 추적하며 그동안 잘 안다고 믿었던 딸의 일상에 충격을 받는다. 사실 서사로만 본다면 사라진 딸을 찾는다는 영화 내용은 그다지 새롭진 않지만 러닝타임 내내 모바일 화면 안에서만 구성되면서 관객들에게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치’로 이름알린 차간티 감독 신작
집착에 사로잡힌 모녀 관계 다룬 ‘런’

아이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엄마와
벗어나려 애쓰는 딸 다룬 스릴러
익숙한 이야기 몰입감 있게 풀어내

이번 영화 ‘런’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소재, 엄마와 딸이라는 친밀한 관계로 시작되는 스릴러 영화를 연출한다. 세상천지 둘 밖에 없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존재.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녀. 그러나 둘의 관계는 사소한 의심 하나로 삐끗거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거짓으로 지어진 모래성이었으니 무너지는 건 더욱 쉽다.

천성적으로 부정맥, 당뇨, 천식, 다리마비 등 여러 가지 장애를 갖고 태어난 클로이. 휠체어에 의지한 채 조용한 마을에서 요양하며 엄마와 단 둘이 살고있는 그녀는 홈스쿨링을 하며 대학 입학증만 기다리고 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또래들처럼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며, 친구도 사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우연한 계기로 엄마의 이름으로 처방된 약을 자신이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의심하게 된다.

병약한 몸으로 태어난 클로이에게 엄마는 필요한 존재임에도 한번 시작된 불길은 꺼질 줄 모르고 이어져 어느새 그녀가 평생 살았던 집까지 낯설고 두려운 장소로 만든다. 그러하니 ‘보호’라는 엄마의 말까지 자신을 옭아매려는 족쇄와 다름없다고 느낀 클로이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달아나려(RUN)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하물며 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 걷지도 못하고, 그 흔한 스마트폰도 없으며, 친구 한 명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엄마 ‘다이앤’은 클로이가 자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로 만들려고 필사적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클로이의 삶(미래)이 안정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의 선택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저 아이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는 영화 속 문제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생명과 직결된 상황 속에서도 대치동 학원가는 멈추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더러는 아이들의 선택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성년이 부모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다이앤이 딸에게 보이는 저 집착과 광기가 코로나19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교육열과 결코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전작도 잘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딸의 실종을 통해, 비로소 딸이 품고 있던 진실을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라면, ‘런’ 또한 부모의 과도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감독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따로 숨겨놓고 있다. 이를 영리하게도 장르적으로 스릴러라는 그릇에 담아놓고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여기에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사라 폴슨이 주연으로 합류하면서 한층 몰입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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