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90. 촌철살인의 텍스트, 이광기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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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1971~)는 2008년에 ‘지구는 여러분 모두의 것이예요’라는 영상작품으로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2011년에는 하정웅청년미술상을 수상한 중견작가이다. 부산을 기반으로 영상과 설치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실을 반영한 촌철살인의 텍스트는 이광기 작가가 주로 해왔던 작업의 한 갈래이다.

2018년 바다미술제에서는 다대포 쓰레기소각장에 설치된 ‘쓰레기는 되지말자’는 작품으로 시민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장소가 가지고 있는 특정성을 활용해 다중적인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 작업을 선보여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또한 ‘판사보다 교활한 범죄자’에서는 빛의 진출과 후퇴작용을 활용해 그 의미가 역전되는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품을 보는 순간 “범죄자보다도 교활한 판사”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착안한 작가의 시(?)적인 텍스트는 우리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속았어요,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라는 작품 역시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있어 상호 극명한 인식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을 한없이 희생하며 자식의 앞날을 위해 헌신했던 부모의 속마음, 부모의 마음을 새기며 열심히 살아온 자식이 결국 자신의 삶이 아니라 부모의 삶을 살았다며 갖게 되는 후회를 담고 있는 텍스트다.

대비되는 이 두 문장은 ‘가족’ ‘사랑’ ‘관계’ 등 다양한 의미들을 성찰하게 만든다. 이처럼 이광기 작가의 언어는 하나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현실로 확산되는, 그래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이광기 작가의 텍스트는 ‘바르게 살자’라는 문장처럼 교훈적이거나 계몽적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계몽과 교훈이 가지고 있는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현실의 속살을 드러내는 언어다. 그리고 그 속에 촘촘하게 달라 붙어있는 이념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지난한 작업이다.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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