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세월호 정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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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핵심 사유는 ‘국가 사유화’다. 비선의 생각을 ‘문고리 3인방’으로 대변되는 대통령 비서실이 정책으로 만들고, 내각은 집행만 하는 ‘비정상적 사적 통치’로 무너졌다. ‘십상시’ 논란, ‘정윤회 사태’에 이어 ‘최순실 사태’에 이르기까지 집권 내내 끊임없이 사적 통치 논란은 이어졌다. 받아 적어야만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란 말이 생겨나고, 심지어 청와대 경제수석인 ‘안종범 업무 수첩’엔 야당 의원 낙선 운동 지시까지 적혀 있었다. 공적 절차를 무시한 국가 사유화다.

국가가 사적 통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정부의 공적 논의 과정이 무너지고, 시스템은 뒤엉킨다. 정부는 ‘영(令)’에 의해 돌아가고 유지되는 공적 시스템이다. 박근혜 정권을 결정적으로 무너트린 세월호 사태도 위급한 순간 무너진 공적 논의 과정과 시스템으로 인해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이 핵심이다.

국정 운영은 공적 시스템이 중심 축
박근혜 정부 몰락 반면교사 삼아야
 
세월호·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전 정권의 폐해 답습해 안타까워
 
선과 정의, 자의적 판단·해석 안 돼
협력·견제 통해 공공성 실현해 가야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출발부터 박근혜 정부를 답습했다. 내각 중심의 국정 운영이 아닌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 집단에 불과한 청와대 수석 중심의 ‘청와대 정부’를 출범시켰다. 역대 최대의 인력과 예산이 투입된 ‘청와대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 통치’를 더욱 강화한 사사로운 권력 형태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그의 저서 <청와대 정부>에서 “청와대 정부란 대통령이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 체제”라고 정의했다.

‘사적 통치’란 국정 운영의 행정 권력 배제를 의미한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대표적 특징은 ‘관료제’에 있다. 정부는 선출된 정치 권력과 공적 절차를 거쳐 임명된 행정 권력이 상호 협력·보완하며 운영된다. 정치 권력은 선거를 통해 행정 권력을 운용할 권한을 부여받지만, 국무위원 중심의 공적 논의 과정을 통해 국정 운영을 해야 정치 권력의 사적 신념과 행정 권력의 현실적 판단이 조화를 이룬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 청와대 수석들을 뒷자리에 앉히고 “절대 장관 앞에 나서지 말라”며 발언권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 정부’는 출발부터 청와대 수석들이 국정을 주도하며 행정과 갈등하거나 아예 이를 배제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청와대와 감사원장이 여전히 갈등상태다. 집권 3년 반,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라는 말이 들려온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소득주도성장’은 부작용만 양산했다. 강고한 팬덤의 적대적 진영 정치는 수위를 넘어 심각한 사회·정치적 왜곡을 심화하고 있다.

취임 직후 인천공항으로 달려간 대통령의 절차를 무시한 정규직 약속은 3년이 지나 ‘인국공 사태’를 유발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감찰 무마, 원전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 조작과 감사 회피를 위한 국가 공문서 삭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더 놀라운 일은 일련의 이런 행위가 대통령의 통치 행위, 민주주의 절차라고 참칭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 또는 세월호 정부’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월호 침몰 앞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한 나라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유능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 3년 전 추운 겨울 내내 차디찬 땅바닥에 앉아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촛불을 들었던 건 공공성이 실현되는 유능한 정부를 원했던 국민적 여망이었다. 세월호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그것을 담았다.

국가는 ‘공공성’이라는 견고한 기반 위에 유지된다.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파멸 원인은 공공성 붕괴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안전과 영속을 보장하는 인위적 목적 집단이다. 국가 권력이 사유화하거나, 사적 통치 상황에 직면하면 공공성이 무너지고, 목적을 상실한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사적 통치’는 독재만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 공동체가 합의한 법치의 무력화, 견제받지 않는 권력, 대통령의 사적 신념이 공론과 합의 없이 그대로 관철되는 상황을 모두 포함한다. 이 모든 게 국가의 공적 논의 과정과 시스템에 기반하지 않는 자의적 통치다. 국가의 선과 정의는 공공성이다. 선과 정의가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판단되어선 안 된다.

이 정부는 세월호의 ‘원(怨)’이 탄핵을 통해 해원하며 탄생했다. 그래서 더욱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복원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 그런 시대적 소명을 방기한 채 사적 통치에 의존하며 공공성을 무너트리고 있는 ‘세월호 정부의 배신’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란 공적 시스템인 정부가 의회와 시민 사회의 협력과 견제를 통해 공공성을 실현해가는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과 측근의 자의적 사적 신념을 위해 공적 시스템이 무너져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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