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 쪽방서 8명 쪽잠, 외국인 선원 밤마다 ‘코리아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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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해수청 주거환경조사 결과

부산 수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외국인 선원들의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A대형선망선단에서 일하는 베트남 선원 8명이 함께 생활하는 쪽방 내부와 공동화장실(왼쪽부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6조의 일부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은 법에 미치지 못한다. 부산 수산업을 묵묵히 지탱하고 있는 외국인 선원들의 주거환경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수준에도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부산일보> 취재진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부산 수산업의 대표적 어종인 고등어를 잡는 대형선망선단 중 규모가 큰 A선단의 베트남 선원들이 생활하고 있는 숙소는 놀랍게도 일반적인 주거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은 바로 서구 새벽시장 인근 한 제빙공장의 자투리 공간이었다.

제빙공장 자투리 공간에 거주
공동화장실에서 겨우 세수만
한여름에도 샤워 엄두 못 내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 조치 전무
해수부 “조만간 숙소 지침 마련”

트럭이 드나드는 공장 출입구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자그마한 방이 나온다. 고작 3평 남짓한 좁은 이곳에서 무려 8명이나 되는 베트남 선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24일 기자가 찾아갔을 때 출입구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베트남 선원들은 바다로 나간 상태였다.

이곳은 최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이 외국인 선원의 주거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 방문한 곳 중 한 곳이기도 했다. 해양수산부 주관으로 각 지역 해수청은 이달 초부터 지난 20일까지 지역의 연근해어선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선원들의 근무환경과 임금체불 현황 등 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실태조사 당시 촬영한 3평 쪽방의 내부 사진을 입수했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방 안의 가재도구라고는 군대의 관물함을 연상케 하는 개별 사물함과 수납 선반, 이불이 전부였다. 다른 가재도구를 구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과연 8명이 함께 누울 수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남은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공장의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 직원들뿐만 아니라 인근 시장상인들도 수시로 사용하는 화장실이어서 매일 청소를 한다고 해도 청결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퀴퀴한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공장이다 보니 따로 세면공간이나 샤워시설도 없었다. 선원들은 화장실에 딸린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했다. 개방된 공동화장실이다 보니, 한여름이라고 해도 옷을 벗고 온몸을 씻는 것은 불가능했다. 겨울에는 더더욱 무리다. 공동화장실의 수도꼭지에는 온수설비가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잠자리가 너무 좁아서 불편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찬물이 나와 씻기가 힘들어요." 실태조사 당시 이곳에서 생활하던 선원들의 공통된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번 해수부의 실태조사에서 대형선망선단은 19개 선단 중 3개 선단만이 조사대상이었다. "조사를 받지 않은 선단 중에는 이곳보다 환경이 더 열악한 곳도 많다"는 것이 기자와 동행했던 선원노련 관계자의 전언이다.

해수부의 외국인 선원 근로실태조사는 지난 상반기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 번 실시됐다. 그러나 이런 실태조사를 실시하고도 외국인 선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는 전무하다. 체불임금에 대해서는 지급명령을 통해 강제조치를 실시할 수 있지만, 주거환경 개선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상의 외국인 고용은 고용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를 따른다. 20t 미만의 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도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20t 이상의 어선은 고용허가제가 아닌 해양수산부가 관리하는 외국인선원제 적용을 받는다. 고용허가제는 국가간 양해각서를 통해 노동인력의 공급이 이뤄지며, 외국인 노동자 근무실태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외국인선원제는 선원관리업체가 노동인력 공급 업무를 담당해 상대적으로 관리 체계가 허술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조만간 외국인선원제를 손질해 그 속에 외국인 선원들의 숙소지침을 마련하겠다"며 "지침의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외국인 선원 공급을 일정기간 중단하는 등 규제를 통해 선원들의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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