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위기의 지구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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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대표

모 방송국의 교양 프로에서 해양과학자 N 교수가 한 강연은 꽤 충격적이었다. ‘바다를 알아야 지구를 구할 수 있다’라는 강연의 주제에서 읽히듯, 인간이 무분별하게 제 터전인 지구를 다룬 결과 심각한 환경 위기에 도달하였고, 그러한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단초가 바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방송은 보는 내내 나를 숨죽이게 했다. 근년에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일일이 들추어 본다는 것은 놀랍고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다. 더 강력해진 태풍, 원인 모를 대형 산불, 예고 없는 폭우. 실로 놀라운 광경의 연속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 소름 끼쳐
거대한 쓰레기 덩이 신대륙 생성
부서진 구조물·건축 잔해 충격
 
온난화로 해안선 지도 변모할 듯
몇십 년 뒤 해안가 건축 소멸 걱정
욕망 절제와 조절 우선시했어야

특히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속수무책 부서진 구조물과 건축의 잔해들이었다. 태풍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 전 직접 겪은 바이니 그렇다 치고, 특별히 두 가지의 관점이 나는 무척 예민하게 한다.

하나는 ‘GPGP’란 생소한 용어였다. Grate Pacific Garbage Patch의 줄임말로 태평양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 덩이의 신대륙(?)으로, 그 크기가 점점 커져 대한민국 면적의 무려 16배에 이른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문제였고, 방송은 불과 몇십 년 뒤에 변모될 해안선의 지도를 보여 준다. 아~ 놀랍게도 내가 사는 이곳의 지도조차 충격적으로 변모될 것이 아닌가?

이 두 가지의 관점은 사라질 것들과 새로 생겨나는 것의 극단적 대비를 보여준다. 사라질 것들은 끝내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고, 새로운 것은 그토록 우려하던 것들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꽤 심각한 크기로 커졌다. 나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땅과 건축을 다루고 있는 나의 눈에 유독 특별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 충격이 어디 건축가인 나뿐이었을까?

땅이 존재하지 않으면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땅은 부동산으로서 불멸의 가치를 누렸다. 그것들은 특히 바다, 강의 주변에 있었다. 혹은 매립으로 해안선을 바꾸어 가면서라도 더 낮고 물에 가까운 곳에 존재하려고 하였다. 그런 땅의 존재 가치가 지금 서서히 흔들린다는 말이다. 막상 그것이 소멸의 길로 접어든다면, 우리가 지니고, 누리고, 희망을 심던 그 가치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들이 휴지보다 못한 것으로 물에 잠겨버린다면 어찌 될까? 끔찍한 일이다. 나의 건축 또한 종내에 흔적도 없이 잠겨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GPGP에 대한 책임과 죄책감은 우리 건축인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다. 문화나 문명을 빌미로 우리는 건축과 그 주변의 것들의 물량과 덩치를 불려온 책임이 있다. 우리는 부동산의 가치에 편승하여 경제적인 혹은 학술적인 뒷받침을 성실히 수행한 바 있다. 또한 스스로 세운 미학적 기준에 도취하여 건축을 화려한 장식품으로 만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각해 보니 그것들의 잔해가 모두 태평양 바라도 흘러든 것이 아닌가?

아무리 보아도 지금까지 우리의 태도는 과했다. 우리가 다루었던 땅, 건축, 인테리어, 생활 도구. 그 모두 우리가 조금 더 앞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었던 바였다. 그게 먼저 지녔어야 할 가치가 아니었을까? 생산자인 우리가 사용자에게 “더 높게, 더 넓게, 더 화려하게 ”라고 말하기에 앞서. “집이 필요 이상 클 필요가 뭐 있어요? 오손도손 모여 사는 게 가족입니다.”, “추우면 옷을 좀 더 입으면 되지요.”, “윗집 소음이 심각하면 잠시 밖에 가나서 산책이라도 하시지. 허허~”와 같은 말들이 먼저 우리 입에서 나왔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지구의 위기 앞에 어느 건축가가 그동안 지녔던 자신의 태도를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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