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소아시아 기행] 지구에 안식년과 희년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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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내서재 대표

기후위기의 빨간불이 켜져 있는 이때, 불과 몇 달 전 만큼의 맑고 파란 하늘과 깨끗한 공기와 물을 계속 접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지금이 그나마 현재의 지구 환경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우리 행성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자 최후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코로나19가 우리 인류에게 뭔가 유익한 걸 남겼다면 그것은 지구의 소중함에 대한 각성과 깨우침의 시간을 가져다준 것일 테다.

그러나 생산 활동 중단이나 감소로 맑아진 하늘과 대기에 대한 감사와 찬탄은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지고 경기 회복과 경제 복원에 대한 염원만 분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신 태도는 아마 기독교가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는 작금의 문명 시대에서는 변경 불가능일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종교의 신은 세상 끝까지 인간이 지배하고 번창하기를 명령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재난, 기후위기 엄중한 경고
지구와 자연의 소중함 깨닫는 계기 돼야
7년마다 각 대륙 돌아가며 생산 활동 중단
50년마다 한 번씩 지구 전체 휴식 제안

이 명령의 성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침략과 장악,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예사냥에 뒤이은 식민 지배, 제4차 십자군 전쟁과 30년에 걸친 신·구교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 마녀사냥 등으로 대변되는 같은 기독교도에 대한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운 약탈…. 구약이라 불리는 유대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숱한 만행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이 모든 행위가 그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더 나아가 축복받기까지 한 것이다.

먼저 퀴즈 하나를 풀고 시작해보자. 아래 중에 과연 어느 것이 실제로 구약에 나오는 내용일까?

A)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을 세워서 그 안의 남자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보호하여 너를 위한 탈취물로 삼지 말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을 적군과 나눠 먹을지니라.

B)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붙이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 죽이고/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무릇 그 성읍에서 네가 탈취한 모든 것은 네 것이니 취하라 네가 적군에게서 탈취한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것인즉 너는 그것을 누릴지니라.

하나 덧붙이자면, 구약 <시편> 137장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잔혹한 신이 폭력과 착취에 신음하는 인간의 약자, 즉 종들과 땅에게 자비를 베풀고 해방을 허락하는 뜻밖의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아마 이것이 내가 보기에 이 신을 용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구실이 되지 않을까 한다. <레위기> 25장은 안식년(安息年)과 희년(禧年)을 선포하는 아주 중요한 장이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해의 일주일, 곧 7년에 7년을 곱한 해의 다음에 오는 해인 매 50년은 위대한 자유의 해(희년)였다. 이때 노예들은 해방되고 땅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건 유대인들이건 기독교도건 안식일과는 퍽이나 대조되게 안식년과 희년을 준수하라는 신의 이 명령은 제대로 지키지도 후세에 전하지도 않는 바람에 죽은 명령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동이 멈추고 산업 시설의 가동이 중단 혹은 축소된 것은 불과 지난 몇 달 동안이었다. 그런데도 눈으로 확인 가능한 지구 환경의 복원이 목격되고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그러나 이 사태가 종결되고 코로나19의 발생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몇 달 전의 관례로 다시 돌아가면 그간의 생산 중단을 만회하기 위해 초과 가동을 할 것이고, 그러면 지구의 환경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파괴 과정 속으로 재진입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기회에 단단히 쐐기를 박는 조처를 숙의해야 하고, 그 방향은 생산의 증진보다는 축소나 현 수준의 동결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구에게 안식년과 희년을 줄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지금 요청된다면, 7년과 50년마다 놀리도록 명을 받게 되는 대상은 경작지가 아니라 대량소비를 염두에 두고 대량생산을 하는 대규모 산업 시설과 대규모 목축장이 될 것이다. 안식년에는 각 대륙이 돌아가면서, 희년에는 지구 전체가 공장 가동을 중단해서 우리도 살고 후손에게도 온전히 물려주어야 할 모두의 집인 지구에게 안식을 주자. 인간에게 안녕과 복지를 누릴 인권이 있는 만큼 우리 행성도 치유를 받고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지구화이고 지구적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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