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명반시대] 47. 라이오넬 루에케 ‘H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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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루에케(Lionel Loueke)는 서아프리카 베냉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입니다. 학업을 위해 버클리 음대와 델레니어스 몽크 인스티튜를 거치며 미국의 재즈 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데요.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음반을 비롯해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 등 유명 뮤지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그의 연주를 더 널리 알리게 됩니다.

루에케가 2008년 메이저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를 통해 데뷔 앨범 ‘카리부’를 내놓았을 때 음악 애호가들은 아프리카 음악과 재즈를 넘나드는 이 독특한 앨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루에케의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솔직히 그 이후에는 이 앨범을 주의 깊게 들어보게 되진 않게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리처드 보나라는 음악적 카테고리의 성향상 너무나 특출한 아티스트가 등장을 했기에, 그의 음악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정도로 인식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루에케의 앨범들을 통해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기량과 기술을 가진 기타리스트의 등장을 확인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특히 그가 2019년에 발매한 피아니스트 케빈 헤이즈와의 듀오 앨범 ‘Hope’는 기타·피아노의 멋진 호흡과 즉흥연주를 들려줍니다. 이것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쾌감을 선사하는 앨범입니다. 또 2017년 베를린 출신의 재즈 보컬리스트 셀린 루돌프와 함께한 듀오 앨범은 가장 흔한 대중음악의 편성 중 하나인 기타와 노래가 ‘이렇게 교감하며 음악을 펼칠 수 있다니!’라며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요. 그만큼 루에케의 음악은 계속 변화하며 매혹적인 색채를 더해 갑니다.

올해 가을 루에케는 또 하나의 정규 앨범 ‘HH’를 발표합니다. 총 14개의 트랙이 수록된 이 앨범은 솔로 기타 앨범입니다. 이미 시그니처가 된 그의 목소리도 함께 등장합니다. 이 앨범이 기타 하나에 관한 음악으로 들리는 것은 이전의 정규앨범과 달리 유독 기타라는 악기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악기의 구성은 무척 소박하지만 음악만큼은 지금까지 그 어느 앨범보다 풍성함을 자랑하는데요. 이제까지의 음악적 행보와 역량이 축적되며, 선사하는 방대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바이브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루에케의 초기 음악이 서아프리카 그리고 미국의 재즈라는, 다소 이분법적으로 음악을 넘나드는 ‘교집합의 장’이었다면 이후 교집합의 접점이 점차 희미해지는가 싶더니, 이제 접점은 사라져 모습을 감추고 오직 ‘라이오넬 루에케의 음악’만이 남아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한 아티스트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지역의 색깔과 개성을 넘어, 오직 아티스트 본인의 음악으로 탄생시킬 때의 놀라운 경험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앨범입니다. 첫 수록곡 ‘Hang Up Your Hang Ups’는 트는 순간 듣는 이들이 이 새로음 음악을 경험하도록 준비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필청 트랙’입니다.

김정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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