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써 달라” 기부 1500억대 땅 바닷가 상업호텔로 둔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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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국이 광복하매 그 모은 토지 삼만사천평과 돈 이백만원을 다 바쳐서 재단법인을 만들고 방어진중학교를 세워 지방 청년 진학의 길을 열었다.’

26일 울산시 동구 대왕암공원 초입에 위치한 옛 울산교육연수원의 향토문화재 ‘고( 故) 리공(李公)종산 공덕비’다.

이종산(1896~1949) 선생은 멸치어장에서 일을 배워 광복 후 큰 부를 이뤘다. 그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하는 지역 청소년을 안타깝게 여겨 1947년 전 재산을 털어 방어진수산중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1959년 공립 방어진중학교로 기부채납하면서 1990년 이전했고, 남은 부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학생수련원을 거쳐 교육연수원으로 활용됐다.

이종산 선생 기부 방어진중 터
울산교육연수원으로 쓰다 방치
시, 호텔·도서관·수련원 등 거론

하지만 이 땅에서 70여 년 이어지던 지역 독지가의 숭고한 교육 정신은 올해 9월 연수원 이전과 함께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다. 연수원 부지(사진)는 대왕암 절경을 품은 까닭에 10년 넘게 개발 논리에 시달렸다. 특히 동구청은 2010년 ‘고래체험장을 만들자’며 연수원 이전에 불을 지폈다. 당시 지역 교육계가 “행정기관의 교육재산 탈취행위”라며 반발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연수원 부지는 사유재산 다뤄지듯 교육청에서 지자체 손으로 넘어갔다. 올해 9월 북구 강동에 연수원 새 청사가 완공하면서다.

현재 시세 15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시중에서 평가하는 연수원 땅은 이제 새 주인만 기다리는 처지다. 울산시는 현재 대왕암공원조성계획 변경 절차에 착수, 연수원 일대에 복합문화관광호텔 건립 등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연구원은 시 의뢰로 교육연수원 활용방안에 대해 1안 호텔, 2안 창작테마도서관, 3안 청소년수련관 등을 제시한 상태다.

옛 방어진수산중학교 졸업생 이 모 씨는 “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이종산 선생 묘지나 공덕비 이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며 “선각자의 유지를 지키는 것이 도리 아니냐”고 지적했다. 연수원에서 만난 한 고령의 산책객은 “만약 내가 선의로 내놓은 교육시설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면 누가 교육 발전에 선뜻 기부할지 걱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연수원을 나서자 대왕암공원의 쭉쭉 뻗은 송림이 산책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70년 전의 약속이 허물어진 줄도 모른 채. 권승혁 기자 gsh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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