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가덕신공항에서 ‘지역독립’ 선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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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사회부장

부산일보사 4층 편집국 회의실에는 <부산일보> 기사를 스크랩한 액자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부산일보독자위원회가 뽑은 ‘좋은 기사상’의 역대 수상작들이다. 거기에 2017년 2월 19일 자 1면 신문도 있다. 부산시청을 출입할 때 동료랑 함께 기자가 썼던 기사다. 제목이 이렇다. 김해 대신 대구신공항 ‘대국민 사기극’.

이 기사의 요지는 정부가 김해신공항을 결정해 놓고도 사실상 대구신공항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제목이 자극적인데 당시 부산의 민심이 딱 그러했다. 기사가 나가기 사흘 전, 국방부는 대구통합공항 예비 이전 후보지 2곳을 결정했다. 대구통합공항안은 개항 시기, 활주로 길이, 사업비, 면적 등 여러 면에서 김해공항 확장안을 앞섰다. 부·울·경과 대구·경북 지자체장의 합의와, 2016년 6월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용역이 무색한 지경이었다.

영남권신공항 결정 20일 만에
대구공항·K-2 통합이전 결정

김해 백지화, 대구·경북 반발
수도권의 ‘이이제이’ 깨달아야

국토균형발전, 지역 자각 계기
수도권의 부담 더는 길이기도


부산시(시장 서병수)부터 발끈했다. “정부가 발표한 김해신공항은 대구공항의 존치를 전제로 한 것인데, 김해신공항은 쪼그라들고 대구통합공항을 크게 짓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것이다.” 기사에는 “정부에 속았다. 이럴 바에야 신공항 입지 심사를 왜 했느냐” “수요도 적은 대구·경북에 신공항이라니 예산 낭비의 전형이 될 것”이라는 반응도 실렸다. 기사가 나간 시점은 19대 대선을 3개월 앞둔 때였다. 이심전심으로 가덕신공항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가덕신공항을 대선 공약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결집됐다. 독자들이 이 기사에 상을 줬다는 사실은 당시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가덕신공항을 향한 간절함이 어떠했는지 가늠하게 한다.

정부가 대구통합공항 이전 계획을 발표한 것은 김해신공항 계획을 내놓은 지 20일 만이었다. <부산일보> 보도에 대해 국토교통부 해명은 이랬다. ‘대구통합공항 이전은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방부와 대구시가 추진하는 군 공항 이전사업으로 김해신공항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2002년 김해 돗대산 민항기 추락 사고의 악몽이 여전한, 그래서 김해공항 확장안을 못내 미심쩍어 하던 부울경의 반발을 무마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년도 더 된 기사를 끄집어낸 것은 지난 17일 김해신공항 확장안 백지화에 대한 대구·경북 지역의 반발이 타당한지 짚어보기 위해서다.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됐을 때 권영진 대구시장은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영남권 5개 시·도 합의를 깼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 기사로 알 수 있듯 합의를 깬 쪽은 실은 대구·경북이다. 대구통합공항 때문에 부울경을 중심으로 ‘동남권신공항’을 추진하자는 논의가 되살아난 것이다. 권 시장은 ‘천인공노’를 말하지만 그 분노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대구·경북은 이제 논외자가 됐다.

대구·경북이 반발하는 이유는 뭘까. 결국 수요 이탈 우려일 것이다. 실제 일부 공항 전문가들은 김해공항 포화로 대구공항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런 평가가 마음에 안 든다면 공항 경쟁력을 스스로 증명하면 될 일이다. 대구를 자주 가는 입장에서 도심 K-2 군 공항 소음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안다. 개인적으로 대구통합공항 추진이 잘 되기를 바란다. 다만 대구·경북은 좀 더 대승적으로 이 사안을 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휘말리면 안 되는 것이다. ‘꼬시래기 제 살 뜯어먹듯’ 지역끼리 싸울 일이 아니다. 그 반발이 전략적인 것일지라도 선은 지켜야 한다.

밥 그릇을 뺏기지 않으려는 수도권의 뒤틀린 심사는 정말 볼썽사납다. 김해신공항이 백지화되자 수도권 언론들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익 앞에서 보수·진보가 따로 없었다. 수도권 논리는 천박하기까지 하다. 지난 19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신공항이라는 떡 하나 던져서 성범죄당 심판 선거를 지역발전 프레임으로 몰고가 이겨보려 한다”고 말했다. 부울경 시민들의 역량이나 자존심은 안중에 없다는 듯한 태도다. 일부 정치인들은 “고추나 멸치 말리는 용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투로 가덕신공항을 비아냥거린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김해공항에 한 번이라도 와 봤냐고. 출국 때 북새통 공항에서 몇 시간씩 고생하고, 입국 때 짐 찾느라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 그들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다. 여야의 가덕신공항특별법이 지난 26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제 시작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가덕신공항은 공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토균형발전의 획기적 상징이다.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탈피해 고루 발전하자는 ‘지역독립’ 선포다. 그것은 근래 집값 폭등 사태에서 보듯, 혼자서 짐을 떠안은 수도권의 부담을 더는 일이다. 지역민이 수도권 이익집단의 본모습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큰 성과다. 지역성 자각과 성취 경험은 앞으로 ‘지역’에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시민단체의 수도권 언론 불매 운동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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