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독도의 슬픈 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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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바람과 파도는 알고 있다./독도의 주인공 강치가/비참하고도 비극적/종 멸종의 길을 걷던 그 슬픈 역사…사라져간 강치여/이로써 우리는 너의 이름 강치를/만고의 역사로 각인할지니.’ (주강현 '사라져간 강치를 기리는, 종 멸종의 에피타프')

독도의 원래 주인은 바다사자인 강치였다. 곳곳에 쉴 수 있는 바위가 많고,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해역이어서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강치는 조선 시대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렸다. 1900년대 초반까지도 2만~3만 마리가 살았다. 하지만, 독도 강치는 1975년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멸종됐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1994년 절멸을 공식 선언했다.

1904년 일본 시마네현 강치잡이꾼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 포획을 위해 일본 정부에 ‘독도 영토 편입 및 차용’ 청원서를 제출했다. 러일전쟁 중이던 일본 정부는 못 이긴 척 남의 나라 땅인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 동해에서 러시아와의 해전을 불과 3개월 앞두고 독도를 군사적 요충지로 파악한 이유였다. 일본 군부는 1905년 2월 독도에 망루와 통신 시설을 무단으로 설치하고, 그해 5월 27일 러시아 발트함대를 동해 일원에서 격파한다.

일제의 비호 아래 일본 강치잡이꾼의 강치 학살도 자행됐다. 일본의 수산회사들은 1904∼1913년에만 강치 1만4000마리를 포획해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짜서 팔았다. 나카이 요자부로는 한 철에 암컷만 650마리를 남획했다는 동료들의 증언도 나왔다. 강치와 독도가 제국주의의 정치공작에 희생된 것이었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 강치 어업을 독도 영유권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는 아직도 동물종 소멸에 관한 반문명적, 반생태적 범죄에 대한 반성이 전무하다는 사실만 고백할 뿐이다. 또한, 전쟁을 위해 조선의 영토를 약탈했다는 국제범죄 행위를 웅변한다.

독도의 슬픈 강치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해양환경공단과 부산대가 30일 울릉도 가제굴에서 강치뼈로 추정되는 동물뼈 20여 점을 발굴해 강치와 DNA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지난 3월 ‘강치야 독도야 - 강치 멸종과 독도 침탈’ 특별전을 열었다. 강치 복원 사업도 강치뼈에서 DNA를 검출하는 등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언젠가 우리 독도 가제바위에서 강치가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 그 때도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억지 주장한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강치에게 먼저 물어보라!”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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