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정부·정치권, 희망고문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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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지역사회부 동부경남팀장

일상생활에서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한다. 2004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 주인공이 언급한 뒤 대중화됐다. 당시 드라마 속 김정은이 이동건에게 ‘나를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 “내가 전에 희망고문 이야기했지, 사람은 ‘예스’라는 말보다 ‘노’라는 말을 명확하게 해야 한대”라고 말한 이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희망고문’은 대사에서 언급됐듯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줘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거짓된 희망으로 괴로움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 단어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빌리에 드 릴라당’의 단편 소설 제목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국내에선 1999년 가수 박진영의 수필집 ‘미안해’에 실렸고, ‘파리의 연인’ 대사로 인용되면서 사회적 반향과 함께 일상생활까지 파고들었다.

이 ‘희망고문’이 부·울·경 지역 800만 시·도민에게 다시 시작됐다. 가덕신공항과 부·울·경 광역철도 이야기다. 지난달 17일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김해공항 확장안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부산일보> 등 동남권 언론에서 이 소식을 알렸고, 가덕신공항의 불씨를 새로 지피는 희망을 품게 했다. 같은 달 26일엔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민의힘 부산의원들 역시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을 발의하면서 가덕신공항 건설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가덕신공항은 2002년 중국 여객기가 김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돗대산에 충돌해 120여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정부 용역이 여러 차례 이뤄졌고, 백지화도 수차례 반복됐다. 대구와 부산 간 지역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부·울·경을 잇는 광역철도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업은 1995년 웅상읍의 부산 금정구 편입 문제가 대두되면서 비롯됐지만, 경남도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2년과 2005년 민간사업자 사업 제안 뒤 흐지부지되는 등 대표적인 선거철 단골 공약이 됐다. 양산시가 2017년 7월 ‘시 도시교통정비 중기계획’에 이 노선을 포함하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렸고, 지난해 상반기 기초조사 용역을 실시하면서 건설에 재시동이 걸렸다.

최근엔 국토교통부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가 이 노선에 대한 절충 노선을 제시했고, 울산시와 양산시가 이를 수용하면서 사실상 광역철도 노선이 확정돼 국토부의 대도시권 광역교통 기본계획(2021~2025년)과 광역교통 시행계획 재정비 용역에 반영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문제는 지금까지 경험했듯 가덕신공항이나 부·울·경 광역철도 건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경되는 선거철 단골 공약이다 보니 이번에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수도권 언론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부정적인 여론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부·울·경에는 희망고문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이번에도 이를 선거 공약으로 활용한다면, ‘희망고문은 이젠 그만’을 외치는 동남권 주민들로부터 엄청난 후폭풍을 초래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ktg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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