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변인 이낙연 vs 대표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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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꼭 19년 전인 2001년 11월, 그가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으로 임명됐을 때다.

신문기자 출신의 이 대표는 초선 의원임에도 신중한 몸가짐과 절제된 언어 사용으로 출입기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가 대변인으로 온 뒤 민주당이 발표하는 논평이나 성명에서 맞춤법이 틀리는 일이 줄었고, 단어 하나하나가 적확하게 선택됐다는 느낌이었다.

“尹총장 혐의 충격적” 발언이 더 큰 충격
지지율 정체로 평소와 달리 조급증 보여
당 대변인 시절 보였던 의연함 사라져
“모르면 멈춰 생각하라”는 논평 곱씹어야

정치부 기자였던 덕분인지 정무적 감각도 남달랐다. 2002년 3월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 때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광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표는 “광주시민들은 3선 의원 수준”이라는 비공식 논평으로 동교동계(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그룹)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노풍’(盧風)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 몫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등이 부대변인으로 당시 이 대표와 함께 일했다. 현 여권에서 날고 기는 쟁쟁한 인물들을 키워낸 셈이다.

현직 대통령이던 DJ(김대중)의 아들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자 “통렬하게 반성하고 법에 따라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2002년 7월 10일)고 회초리를 들었다. DJ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그였지만 이 순간엔 단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2002년 12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선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관 방송사인 KBS 기자에게 가장 먼저 질문 기회가 주어졌고, 그 다음부터는 중앙선대위 대변인을 맡고 있던 이 대표가 질문자를 선정했다.

그때 이 대표가 지목한 첫 질문자가 필자였다. 그때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산 민심이 호의적이지 않았는데(16대 대선에서 부산 득표율은 29%에 불과했다), 이를 고려한 상징적 의미로 ‘부산일보’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주는 순발력을 발휘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라는 초대형 사건을 터뜨리자 이 대표도 거침없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다음날 최고위원회에서 “법무부가 밝힌 윤 총장의 혐의는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또 “법무부는 윤 총장에 대한 향후 절차를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주길 바란다”면서 “신속히 진상조사로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윤 총장은 검찰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달라”고 압박했다.

내친 김에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이후 여당이 스스로 국정조사 주장에서 발을 빼자 이 대표는 같은 신문사 출신인 야당의 후배 의원으로부터 ‘추풍낙연’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을 “조직과 권력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평소 이 대표의 성격을 알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렇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을 단정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윤 총장의 혐의 보다 이 대표의 평소답지 않은 발언이 ‘더 충격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판사 사찰’이라는 혐의가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 이를 너무나 쉽게 기정사실화해버리는 모습에서 이 대표가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수군거림까지 들린다.

그가 최근 내놓는 언행의 배경으로 짐작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국무총리 시절 40%에 달하던 지지율은 정체돼 있고, 그래서 친문(친문재인) 세력을 업지 않으면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는 조급증이 생겼을 것이다.

이 대표가 친문에 어필하기 위해 이런 무리수를 뒀다면 소탐대실이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가장 높을 때 국민들의 머릿속에는 ‘반듯하고 안정감 있는 총리’ 이낙연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급해진 이 대표가 친문의 지지라는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한다면 그를 좋아하는 더 많은 국민들은 다른 길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2002년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지지율 하락을 빌미로 당의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흔들기’에 나서자 당시 이낙연 대변인은 역사에 남을 논평을 남겼다.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 길로 가라. 큰 길을 모르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보라”(2002년 10월 24일)

지금이야말로 이 대표는 큰 길로 가야 할 때이다. 그게 어려우면 잠시 멈춰서서 옛날을 되돌아보라.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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