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이자 전부인 바다를 비극적 소설로 녹여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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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양장편소설 <남극해>를 낸 이윤길 해양소설가는 “43년을 바다와 함께 살았다”며 “바다와 나는 온통 한몸”이라고 했다 . 김경현 기자 view@

해양문학가 이윤길(61) 선장이 해양장편소설 <남극해>(전망)를 갖고 뭍에 올랐다. 그는 현재 배를 타면서 시와 소설을 쓰는 한국의 유일한 해양문학가다.

“올 1월에 남서대서양 포클랜드 근해로 5월까지 예정으로 오징어 트롤 배를 타고 나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10월 중순까지 바다에 묶여 있다가 최근 귀국했어요.” 그 기간 풍치를 만나 9개 치아가 내려앉았다고 한다. 이번 책은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고한 소설가 이복구 선생님과의 인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에요.” 2011년 같은 제목의 중편으로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대상을 받았는데 그때 심사를 한 이복구 소설가가 “이 얘기를 장편으로 써라”고 한 격려가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배 타는 해양문학가 이윤길
첫 장편 소설 ‘남극해’ 출간
삶의 허무 극단적으로 표현
체험으로 10년 숙성한 작품

소설은 남극대륙 웨들해 심해에 메로 잡이를 갔던 피닉스호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중간에 선상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급기야 마지막에는 불이 나 배가 가라앉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직조한다. <남극해>는 10년이 걸린, 10년을 숙성한 작품이다. 2018년 그는 국제과학옵서버 자격으로 남극해를 두 번 다녀왔고, 그중 한 번은 메로 잡이 배를 탔다고 한다. 이번 장편 <남극해>에 딱 걸맞은 체험을 한 것이다. 10년 전 중편을 쓸 때 메로 잡이 선사를 찾아가 취재를 시도했으나 자료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역시 체험해서 알고 쓰는 것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번 장편에서는 옛 중편의 잘못을 많이 바로 잡았지요.” 삶처럼 문학도 체험해서 아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체험은 그것에만 얽매여선 안 되지만 그것 없이는 어떤 것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토대라는 말이다.

1959년 강원도 주문진 태생인 그는 고교 3년 18세 때인 1977년부터 배를 탔다. 그는 43년간 바다와 살았다. 처음 남미 수리남 원양에 갔다 온 뒤 무서워 구로공단에 들어가 한 달간 일한 적을 빼고는 그의 삶과 체험은 바다 그 자체였다. 그는 그의 시 구절을 말하면서 “바다를 빼면 내가 없다”고 했다. 아예 ‘나는 바다다’라는 것이다.

소설 <남극해>에서 갑작스러운 화재로 배가 침몰하는 대목은 당황스럽다. “바다가 그렇습니다. 파도 한 방이면 배가 가라앉고, 즉각적 판단에 의해 생사가 순간적으로 오가는 곳이 바다예요. 순간에 모든 일이 판가름나는 바다에서의 생리는 허약한 우리 삶의 허무와 실상을 더 극단적으로 드러낸다고 할까요.” 배가 화재로 침몰하면서 선원 총 서른넷 중 열여덟이 죽는데 죽은 이들 중 4명의 이름만 나온다. 살인을 저지른 조선족 출신의 조리사, 그를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든 강 사장, 강 사장과 함께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박 기관장, 그리고 화재 때 소방호스를 들고 기관실로 뛰어 들어간 외국인 선원 아만, 이들 네 명은 지금 시대 뱃사람의 전형성을 띠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들은 죽어서 바다로 영원 회귀한 겁니다. 저에게 바다는 바로 그런 곳이에요.”

해양시를 썼던 그는 2007년 부산에서 한국해양문학가협회 모임에 나가 천금성 해양소설가를 만나면서 소설도 쓰게 됐다. 우회했으나, 또 그 과정은 쉽지 않았으나 “야, 니 소설 써라”는 그 말대로 결국 쓰게 됐다는 거다. 아버지는 평양, 어머니는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모두 실향민이었다. 엄청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31세 때 일찍 선장이 됐는데 ‘뱃놈다운 깡’으로 살았고 글을 쓸 거라고 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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