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에 복싱부 만들어 엘리트 선수 키워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손영찬 대한복싱협회 고문

“한국 복싱이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선수를 키울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58회 대한민국체육상 체육포장을 최근 수상한 손영찬(78) 대한복싱협회 고문은 자신의 수상보다 복싱의 침체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부산만 해도 복싱 체육관은 많은데 선수 육성 체육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체육고를 제외하면 복싱부가 있는 학교가 없다”면서 “중·고교에 복싱부를 만들어 엘리트 선수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부산 복싱 대부’의 한마디엔 옛 효자 종목 복싱에 대한 그리움도 느껴졌다.

대한민국체육상 체육포장 수상
선수·지도자로 ‘부산 복싱의 대부’
기본 스텝 무시하는 후배들 아쉬워

손 고문은 선수로서는 물론이고, 지도자로서도 전성기 한국 복싱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는 1966년 태국 방콕아시안게임 복싱 플라이급에서 부산 선수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1966년·67년 세계군인복싱선수권대회에서는 2년 연속 동메달을 따냈다.

지도자 경력은 실로 대단했다. 1970년부터 동아대에서만 31년간 감독직을 맡으며 각종 국내외 대회를 석권하다시피 했다. 전국대학선수권 단체전 8회 우승을 비롯해 자신이 키운 제자들이 따낸 국내 대회 금메달만 253개에 달한다. 국제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13개 수확했는데, 특히 자신을 포함해 제자들이 4차례 아시안게임(1966·70·74·82년)에서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프로복싱 플라이급 전 챔피언 박찬희(63)와 미니멈급·라이트 플라이급 전 챔피언 최희용(55)도 그가 가르쳤다. 손 고문은 박찬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아린다고. “박찬희는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최고의 복서다. 롱런도 충분히 가능했는데…”. 박찬희는 세계 타이틀 3차 방어전을 마치고 손 고문을 떠났다.

2001년 동아대를 퇴임한 손 고문은 중국 복싱연맹의 러브콜을 받아 중국 대표팀을 지도하기도 했다. 당시 가르친 선수 중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고 세계 챔피언까지 지낸 ‘중국 복싱의 영웅’ 쩌우스밍도 있었다.

손 고문은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로 자신의 올림픽 출전 무산을 꼽았다. 현역 시절 적수가 거의 없던 그였지만 1968년 멕시코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불의의 눈 부상을 당해 탈락한 것이다. 손 고문이 출전하지 못한 멕시코올림픽에서는 밴텀급에 출전한 장규철(76)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그는 플라이급에서 손 고문에게 패한 후 체급을 올려 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 고문은 후배 선수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요즘 선수들은 스텝이 잘 안 된다. 그냥 걸어 다닌다”면서 “스텝을 밟으며 잽으로 시작해 원·투·스리가 나가야 되는데 힘의 권투만 한다”며 기본기 부족을 아쉬워했다.

손 고문은 남들이 잘 모르는 개인적인 얘기도 들려줬다. 사실 자신은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고. 한쪽 눈만으로 거친 ‘사각의 링’을 주름잡았으니, 그는 ‘인간승리의 표본’이었던 셈이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