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사하는 있는데 사중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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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영도 길(검은 선). 흰 점선 안이 청학고개다. 영도문화원의 <근대 영도의 도시풍경>에서 발췌.

부산이 커지면서 서면은 상하로 나누어 서상면, 서하면이 되었고 낙동강 백사장 마을 사면(沙面)은 상중하로 나누어 사상면, 사중면, 사하면이 되었다. 지금도 지명이 남아 있는 사상과 사하 유래를 접하는 까닭이다. 그러면서 묻는 게 사중(沙中)은 지금 어디냐는 거다.

어딜까. 1904년 발간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家戶案)>에 상세하게 나온다. 구한말 부산에 해당하는 동래군의 실태를 담은 일종의 부산 백서다. 거기에 나오는 사중면 마을은 모두 일곱. 다음과 같다. 숫자는 가구 수다. 가구를 세대라고도 하는데 세대는 일본말이다. 초량동 216, 영주동 95, 절영도 160, 청학동 6, 상구용동 18, 영선동 10, 하구용동 23.

초량은 왜관이 있어 가구가 많았다. 절영도는 수군 부대가 주둔했다. 상하로 나뉜 구룡동은 목장 마을. 나라에서 말을 키우던 국마장이 있었다. 말을 돌보며 먹고사는 집이 꽤 됐을 터. 상구룡동은 현재 동삼1동 일대 상리, 하구룡동은 동삼2동 일대 하리다. 동삼동은 동쪽 세 마을이란 뜻. 세 마을은 상리·중리·하리다. 상리는 웃서발(上西跋), 하리는 아랫서발(下西跋)이라 했다. 중리는 검정방우, 한자로 흑암(黑岩) 또는 흑석암이라 했다.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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