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절망 속 조용한 아우성, 청년 여성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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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터와 일상을 무너뜨리는 가운데,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자 시도하는 청년 여성이 급증했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무려 4844명의 20대 여성이 자살을 시도했다. 전체 자살 시도자의 32.1%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10대와 30대 여성까지 포함하면 9386명으로 전체의 62.2%에 이른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한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의 압도적 1위가 자살이었다.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무려 전년 대비 25.5%나 증가했다.

자살 시도자 중 20대 여성 ‘압도적’
10·30대 여성 포함하면 무려 62%

더 충격적인 건 무심한 정부와 사회
청년 여성 자살 사회문제 인식해야

달라진 삶의 조건, 제도가 못 따라가
청년 여성 위한 특단 대책 마련돼야


충격적인 수치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이 수치에 충격받지 않는 정부와 사회다. 통계청 발표 이후, 청년 여성 자살 증가 팩트를 전달하는 기사는 있었으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올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수치들이 공개됐으나, 여야 간 정치 공방 속에 주목받지도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동의 자리를 20년 가까이 고수하고 있어 둔감해진 탓일까. 사실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급증한 자살률은, 2008년 금융위기를 지나며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 30명대라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9년 기준 26.9명으로 여전히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2004년부터 정부는 자살예방대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왔다. 우울증 검진 등을 통한 고(高)위험군 발굴, 정신건강복지센터 확충, 자살 시도자 상담 및 사후관리 등을 추진했다. 수많은 대책이 있었지만, 수많은 청년 여성의 죽음은 막지 못하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청년 여성의 자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다. 그간 자살 대책 논의는 주로 노인 자살률에 매몰됐다. 자살 사망자 수의 절대적 수치로 보면, 노인이 훨씬 많다. 하지만 청년 자살은 꾸준히 증가함에도 문제화되지도 못했다. 청년의 나약함, 생명 경시가 문제화됐을 뿐이다.

둘째, 청년(특히 여성)의 달라진 삶의 조건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다. 2030세대는 극심한 경쟁과 고용불안, 불평등이 일상화된 90년대 후반 생애 초반을 보냈다. 경쟁적으로 교육받고 스펙 쌓기에 힘썼지만,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은 절망적이다.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가 일상이 됐다.

청년 여성의 현실은 더 절망적이다. 그간 20대 여성의 높은 대학진학률,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근거로 성차별이 사라졌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턴, 비정규직은 여성에게 더 일상적이고, 이런 일자리는 위기 때면 가장 먼저 사라졌다. 올해 코로나19로 대면 서비스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3월에만 20대 여성 1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실업은 사소한 문제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때마다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은 남성 가장 중심이었다. 이미 남성이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아니고 남녀 모두에게 평생고용이 생애 과업이 된 시대지만, 여전히 여성을 보조인력, 잉여인력으로 취급하는 사회가 청년 여성을 좌절하게 하고 있다.

지난해 여성 청년 자살자 수가 증가한 것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모방한 효과라 설명했다. 드러난 현상만 보고, 이면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냈다. 지난해 10월과 11월에 사망한 두 여성 연예인은 데이트폭력, 불법 촬영, 무자비한 악플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했다. 이 문제를 단순히 우울증, 정신건강 문제로 취급할 수 없고, 단순한 모방효과라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울증, 자살은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다. 사회문제가 개인의 몸으로 들어와 발현된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봐야 한다. 청년을 독립적 사회구성원,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여성을 잉여인력, 출산 도구로 수단화하는 사회, 남성 가장 중심의 낡은 사회보장제도 틀을 유지하며 청년 여성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제공하지 않는 사회, 여성 혐오와 폭력, 더욱 은밀해진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방치하는 사회. 이런 요소들이 공기 속 미세먼지, 바닷속 미세플라스틱처럼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도 모른다. 청년 여성들의 죽음은 이런 사회에 대한 경고신호,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해 달라는 조용한 울부짖음인지도 모른다.

지역의 미래는, 단 한 명의 삶도 놓치지 않는 것에 달려 있고, 청년의 절망적 외침을 생(生)에 대한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단지 코로나 블루 예방대책에 한정되지 않는, 청년의 삶을 개선하고 청년 여성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폭력을 제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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