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어민 ‘분열기금’ 된 해상 풍력 ‘상생기금’ 7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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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투자사 GIG가 올해 동해가스전 인근에 설치한 풍향계측기(라이더). 울산시 제공

“겉보기만 상생기금이지, 사실 어민 분열기금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울산 앞바다에서 국내 최대 규모 부유식 해상 풍력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해외 민간투자사들이 이 사업을 반대한 일부 어민단체에 상생기금 70억 원을 푼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지역 어촌사회 전체가 상생기금을 받은 쪽과 그렇지 못한 쪽으로 나뉘면서 깊은 내홍과 집단 반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동해가스전 인근 36조 원 들여
원전 5~6기 규모 풍력단지 추진
풍향계측기 설치 찬성 조건으로
사업자가 어민대책위에만 건네
반대추진위 “집행 과정 불투명”

2일 울산시와 울산수협, 지역 어민단체 등에 따르면 울산 해역에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업체 5곳 컨소시엄이 최근 7~8개월에 걸쳐 울산어민대책위원회에 총 70억 원의 ‘부유식 관측 어민 상생기금’을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컨소시엄 구성 업체는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인 지아이지-토탈(GIG-Total), 에퀴노르(Equinor), 쉘-코엔스헥시콘(Shell-CoensHexicon), 에스케이-이엔에스-씨아이피(SK-E&S-CIP), 케이에프윈드(KFWind) 등이다. 2018년 중순 가시화한 이 사업은 동해가스전 인근 해역에 2030년까지 원전 5~6기와 맞먹는 6GW 규모 풍력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투자 금액만 36조 원. 풍력단지가 모두 건설되면 전체 사업구역은 1000㎢로, 여의도 면적의 약 300배에 이른다.

애초 어민대책위는 생활 터전인 바다 한가운데서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단지 추진에 거세게 반대했다. 사업구역이 정부가 공식 지정한 94해구로, 인기 어종인 가자미 오징어 문어 등이 서식하기 때문이다. 부산과 경북 경주, 포항, 강원도까지 전국 채낚기, 자망, 기선저인망 어선이 대거 몰리는 황금어장이다. 컨소시엄 입장에선 어민 반발을 해결하는 게 사업 성사의 관건인 셈이다.

이들 업체는 어민대책위 요구에 따라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사업구역에 풍향계측기(라이더) 14기를 설치하며 1기당 5억 원씩 총 70억 원을 풀었다. 라이더는 해상풍력 발전허가를 받기 전 사업성을 평가하기 위해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조사하는 장비다.

어민대책위는 “상생기금을 받는 대신 라이더 설치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고, 그렇다고 풍력 사업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속한 수산경영인연합회, 통발협회, 자망협회 등 12개 단체(280여 명)는 그간 투쟁 경비와 세금 등을 제하고 단체별로 약 4억 5000만 원씩을 받아갔다. 여러 단체에 속한 어민은 상생기금을 중복 지급받은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퍼지자 지역의 다른 어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지역 어촌계 등에서는 “어민대책위가 라이더 설치만 찬성했다고 하나, 사실상 풍력 사업의 물꼬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소형 어선 선주를 위주로 구성한 부유식해상풍력 반대추진위도 “우리 추진위에만 580여 명 선주 등과 여기에 딸린 2만여 명 종사자가 풍력사업으로 졸지에 생업터전을 빼앗길 위기”라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공청회나 협상도 없이 일부 단체에만 상생기금을 지급한 것은 잘못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진위는 상생기금 지급과 집행 과정이 불투명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며 수사기관에 진정을 넣겠다고 밝혔다.

어민대책위 관계자는 “라이더가 설치된 해역은 주로 대형 어선의 가자미 조업 구역으로 사실 소형 어선과 관련성이 거의 없다. 만약 발전단지 케이블이 육지쪽으로 들어오면 적절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상생기금은 보상비가 아니어서 그간 투쟁을 함께 했던 어민단체에 한해 공평하게 나눴고, 일부 어민에게 중복 지급한 경우 단체별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일단 이번 사태에서 한 발 빼는 분위기다. 시 관계자는 “상생기금 지급은 민간투자사와 어민대책위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져 시에서 관여하지 않았다”며 “다른 어민단체의 반발 조짐을 최근 접했고, 행정기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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