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정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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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 단순히 ‘가운데’라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원(始原)이나 기준이 되는 그 무엇의 가치를 가진다. 중앙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동경과 흠모가 묻어 있고, 중앙에 거하는 이는 자부심으로 은근히 뿌듯해한다. 중앙은행, 중앙정부, 중앙지 등의 단어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중앙이 그럴진대 ‘한 점 어긋나지 않은 가운데’인 정중앙(正中央)이야 다시 말해 무엇할까.

강원도 양구군 남면은 다음 달 1일부터 국토정중앙면으로 불리게 된다. 남면 도촌리에는 ‘대한민국 정중앙 표지석’이 있다. 2001년 국립지리원이 섬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4극점을 기준으로 측량해 ‘동경 128도 2분 2.5초, 북위 38도 3분 37.5초’가 정중앙임을 확인했고, 그 위치가 도촌리였다. 남면 사람들의 ‘대한민국 정중앙에 산다’는 자부심이 공식 행정명까지 바꾼 것이다.

그런데 국토의 정중앙을 주장하는 곳은 의외로 여러 곳이다. 경기도 포천시는 섬을 빼고 측량하면 자기가 국토의 정중앙이라 우기고, 충북 충주시는 옛 지명이 중원(中原)이라는 역사·문화적 근거를 들며 정중앙이라 여긴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 가평군은 단군이 묻혔다는 설화가 있다며 우리나라 정중앙이라고 주장한다.

정중앙에 대한 집념은 지구촌 곳곳에서 더 크게 확인된다. ‘세계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가 있는 그리스 델피, ‘지구의 정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일본배꼽공원이 있는 효고현 니시와키시 등이 그 예다.

요즘 ‘부산 정중앙 표지석’을 두고 어수선하다. 이 표지석은 부산의 정중앙으로 측량된 부산진구 부암3동의 한 지점에 부산진구청이 2012년 설치했는데, 거기서 영험한 기운이 나온다며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돼 옮겨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다른 데 옮기면 더 이상 부산의 정중앙이 아니게 되는데 어쩌나”하며 서운해하는 이들이 많다.

특정 지점을 콕 집어 정중앙이니 배꼽이니 하는 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둥근 지구 표면의 한 점에 불과한데 가운데가 어디 있고 바깥은 또 어디 있겠냐는 거다. 그리 보면 표지석 하나 옮긴다고 설왕설래하는 건 공연한 호들갑일 테다. 하지만 삶이 겨워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은 민초들의 간절한 심정을 생각하면 꼭 그리 매정하게 잘라 말할 일은 아닌듯싶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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