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마음의 어머니 닮은, 깨달음의 경지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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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혜의 연꽃을 들고 있는 나한 상. 허경혜 제공

영광도서 8층 ‘리 갤러리’ 초대전으로 ‘허경혜의 나한과 심영란의 보듬이’ 전시회가 열린다. 두 사람은 20여 년 작업을 같이해온 사제지간이라고 한다.

허경혜(68)는 흙의 작가로 불린다. 흙은 뭔가. 세상 만물이 바스라지고 풍화돼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 흙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서 다시 만물이 소생하는 것이다. 흙으로 그릇이나 조각을 빚어내는 것이 바로 그런 이치를 구현한 거다. 유는 무로 돌아가고, 다시 무는 유를 빚어내는 것이다.

흙의 작가 허경혜 13일까지 전시
제자 심영란 보듬이전 함께 열려

30년 훨씬 넘게 흙을 만져온 허경혜는 그런 흙에다가 이번에는 ‘나한’ 형상을 부여했다. 불교에서 나한은 최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생멸과 유무를 넘어선 흙의 본질을 꿰뚫어 아예 흙에다가 깨달음의 형상을 얹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저의 나한은 번뇌를 끊어낸 모습 그 자체라기보다는 무한한 마음의 어머니를 닮은 형상”이라고 했다. 끝없이 주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라는 것이다.

그는 세상 뭇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힘들었던 나름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그 삶을 견디면서 인물상과 토우를 빚고 또 빚었다. ‘한국인물’이란 이름도 붙여봤고 ‘흙사람’이라고도 불렀다. “인물상은 제 삶의 표현이지요. 거울이에요.” 때문에 제대로 된 인물상을 빚기 위해서는 마음이 모처에 이르거나, 빈자리로 한없이 나아가야 하는 거다.

33년간 17번 열었던 각종 전시 중 그의 조각상과 전시에 ‘어머니’라는 명시적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04년이었다. 그가 살았던 세월, 한의 덩어리를 승화시킨 거처가 어머니였다. 추상적 어머니가 아니라 60년 갑년의 삶을 살면서 온몸으로 회통하기 시작한 세속 출가의 인연 자리가 ‘나의 어머니’ ‘너의 어머니’, 바로 ‘한국의 어머니’였던 거다. 이번 전시는 그 어머니를 나한으로 승화시킨 거다. “나한 상은 보살상과 달리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만드는 이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게 특징이에요. 나한 상에 우리 민족의 소박한 심성을 닮은 익살스러운 표정도 구사하고, 그것을 넘어 파격적인 모습도 구사했어요.” 이번 전시회에 그는 2년간 빚은 나한 상 28점을 출품한다. “흙으로 수작업한 나한은 유일할 겁니다. 옻칠도 했지요.”

‘보듬이’는 굽이 없는 찻그릇을 말하는데 막사발 전문가이자 소설가인 정동주가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 제자 심영란의 보듬이 30여 점도 함께 나온다. 끽다거(喫茶去),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어머니 나한과 차 한 잔 마시러 가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앞·뒤 끌밀전=7~13일 서면 영광도서 8층 리갤러리. 010-2843-2825. 최학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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