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마야어 별주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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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최근 국악을 대중음악으로 재해석해 인기를 끌고 있는 이날치 밴드가 부른 ‘수궁가(별주부전)’의 한 구절이다. 용왕의 명을 받고 육지로 나온 자라(별주부)가 물 위로 올라오느라 목이 마비돼 토끼를 부른다고 부른 “토 선생”을 그만 “호 선생”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멋 모르는 호랑이가 자기를 부른 줄 알고 내려온다는 설정이다. 별주부전의 한 대목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작자를 알 수 없는 우리 고전 소설인 별주부전이 21세기에도 충분히 ‘감성 공감’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토끼전 수궁가 등으로도 불리며 대략 100여 종의 이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별주부전은 우리 고전 소설 중에서도 독특함이 돋보인다. 동물들을 의인화한 우화 소설이면서, 고전 소설의 대체적인 주제인 ‘권선징악’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등장하는 동물들의 입장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용왕의 명을 받고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나온 자라, 호의호식의 화려한 생활을 꿈꾸며 자라를 따라 용궁 행을 택한 토끼의 행위 모두 자기 입장에서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이 때문에 별주부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속이는 인간의 세태와 분에 넘치는 허욕,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층 풍자 등 현대인에게도 재밌는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마당극이나 창무극 등에서 웃음과 풍자, 비판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가공되는 것도 모두 별주부전의 이런 특징에 기인한다.

우리 고전 소설인 별주부전이 이번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아메리카 과테말라의 마야족 원주민 어린이들에게도 읽히게 됐다. 최근 과테말라 교육부는 별주부전을 과테말라 4개 주요 마야어 교과서에 수록해 전국 원주민 학생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별주부전이 수록된 것은 마야어 중에서도 사용 인구가 많은 4개 언어의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로, 과테말라 전국 17개 주요 원주민 거주 지역의 학생 12만여 명이 대상으로 알려졌다. 현지 교육 당국은 “한국 이야기들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교육적이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지역·역사·문화적 배경이 우리와 판이한 곳이지만, 인간의 심성은 서로 통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의 다른 전래 동화도 추가로 수록될 예정이라고 하니, 이참에 한국 고전 소설의 세계화도 기대해 본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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