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한 줄 때문에… ‘코로나 현장’ 내몰린 청년 인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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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겐 코로나보다 취업난이 더 무서우니까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하 공단) 소속 단기 계약직 인턴 A(27) 씨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푸념이다. 올 8월 공단에 인턴으로 입사할 때만 해도 그는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었다. 적은 액수지만 돈도 벌고 스펙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3차 대유행에 접어들면서 A 씨를 포함한 전국의 인턴에게 ‘기회’는 단숨에 ‘위협’으로 바뀌었다. n차 감염 확산으로 대면 활동의 위험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하루 최소 4시간을 현장에서 대면 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 단기 계약
1500명 인턴 전통시장 상주
GPS 통해 현재 위치 보고해야
상가 현황 조사·설문… 감염 우려
공단 측 “상황 따른 대책 계획”

공단은 정부의 청년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달까지 3차례 전국에서 1500여 명에 달하는 청년인턴을 끌어모았다. 이들의 업무는 ‘전통시장 조사·홍보’다. 청년을 통해 전통시장을 홍보하고 상가 등 전통시장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게 공단의 의도다. 부산에도 220여 곳의 전통시장에서 150여 명의 청년 인턴이 활동하고 있다.

A 씨의 경우, 상점만 100곳이 넘는 대규모 전통시장을 일터로 배정받았다. A 씨에게 주어진 하루 업무는 △시장 상가 3곳 조사(매출, 판매 물품 등) △전통시장 이용 관련 시민 10명 설문조사 △화장실 현황 등 시장 인프라 조사 △SNS 채널에 전통시장 상가 홍보 게시글 작성 등이다.

공단은 하루 4차례 인턴의 위치를 GPS 앱을 통해 보고 받으며 업무시간 중에는 시장에서 상주할 것을 요구했다. 배정받은 시장에 출근했는지, 업무 시간 중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지 등을 일일이 온라인으로 확인한다.

A 씨는 평일 오전 9시 시장에 출근해 시장 중심 200m 반경 안에서 공단 앱을 실행하고 GPS 현 위치를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 1시와 오후 3시 30분, 6시에 추가 보고를 해야 한다. 하루 유동인구만 1000명이 훌쩍 넘는 전통시장에 배치받아 하루 종일 이들과 접촉하고 있는 셈이다.

공단은 최근에 업무가 미비하거나 시장에 머물지 않는 인턴을 대상으로 경위서 형식의 ‘소명서’ 작성을 지시하기도 했다. A 씨는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지만, 인턴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에 ‘금(金)턴’에서 잘릴까 봐 말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시장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몰리지만 A 씨와 같이 대규모 상점가를 배정받은 인턴들은 시장을 떠날 수 없다. 인턴 매뉴얼상 업무 일과는 오후 1시까지이며, 이후에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시장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인턴들은 어쩔 수 없이 오후 늦게까지 시장에 머물러야 한다. 당일 조사한 내용을 공단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A 씨는 “감염 두려움에 휴대용 비누와 오전, 오후용 마스크를 따로 챙기는 인턴들도 있다”고 전했다.

GPS로 실시간 인턴 위치까지 확인하는 공단이지만, 정작 공단 직원은 현장에 없다. 현장에 있는 인턴들에게 메신저를 통해 업무 지시를 하는 게 전부다. A 씨는 “인턴 사이에서 ‘청년이 봉이냐’ ‘불안한 현장에 보내려고 인턴을 뽑았느냐’는 말까지 나온다.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공단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대규모 인턴을 채용한 만큼 코로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금요일 근무를 재택으로 돌리는 정도의 대안밖에는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디지털청년일자리TF 부서 관계자는 “국민 세금이 나가는 사업이라 전면 재택근무로 전환하기 어려운 등 균형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인턴들에게 소독제와 마스크를 지급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는 있다. 전국 지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보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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