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내가 따냈다”… ‘공치사’ 경쟁, 과하거나 점잖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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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예산안 통과 이후 지역 국회의원들이 국비확보 실적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부산·울산·경남(PK) 여야 의원들이 어김없이 국비 확보 실적을 놓고 ‘셀프 공치사’에 여념이 없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었다면 당연히 지역 유권자들에게 자랑할 일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어떤 의원은 1000억 원 넘는 예산이 자기 공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의원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소소한(?) 실적을 내세우기도 한다. 의원 개개인의 실력 차이가 워낙 커서일까. 물론 예외적 사례들이 없진 않지만, 실력보다는 ‘포장의 기술’ 차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역구 의원 1000억대 확보 자랑
정부 사업까지 본인 공적으로
수십억만 내세운 與 예결위원도
일부 사업 서로 “내 실적” 주장
유권자 현혹 여지 크다는 우려

6일까지 PK 의원들이 배포한 예산 관련 보도자료를 보면 국민의힘 윤영석(경남 양산갑) 의원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윤 의원 측은 “내년도 국비 예산 약 1300억여 원을 확보했다”면서 “양산시 관계자들로부터 ‘국비 예산 폭탄 약속을 지켰다’ ‘역시 예산 정책 전문가답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지역구에 배정된 국비 사업의 공은 지역구 국회의원이 1차적으로 가져가지만, 윤 의원의 이번 ‘셀프 칭찬’은 좀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 측이 실적 ‘1순위’로 올린 양산 부산대부지에 총사업비 360억 원 규모의 천연물안전지원센터 구축 예산만 해도 그렇다. 이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양산부산대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권 의생명산업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다. 대통령 공약인 만큼 여권이 가장 신경을 쓴 사업이다. 특히 정부 예산안에서 해당 예산이 삭감되면서 김경수 경남지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직접 만나는 등 경남도 정무라인이 총동원돼 가까스로 종합계획용역비 4억 원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도 관계자는 “윤 의원도 지역구 사업이니까 노력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그 예산은 솔직히 경남도가 엄청나게 고생해서 겨우 지킨 예산”이라고 전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 박재호(부산 남을) 의원이 이번에 자신의 실적으로 내세운 국비 확보 실적은 블록체인 벤처컨벤션 사업 예산 24억 5000만 원 등 4건의 사업에 모두 92억 원이다. 부산시당위원장인 박 의원은 예산안 정국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PK 민주당 대표로 들어갔다. 92억 원이라는 금액은 예결위원으로서도 그렇고, 다른 의원들이 내세운 실적에 비하면 많은 금액은 아니다. 박 의원 측은 “PK지역 예산에 이름을 다 걸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의원실에서 진짜 노력해서 얻은 것만 넣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PK 몫 예결위원으로 활약한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도 마찬가지다. 조 의원은 아예 ‘이번에 내가 국비 얼마 땄다’는 식의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 대신 예산 정국이 끝난 직후인 지난 3일 국토교통부 국장 등을 만나 지역구에서 추진·검토되는 도로 중 국도 20호선 의령~정곡 4차로 확장 등 9개 사업이 ‘제5차 국토·국지도 5개년 계획(2021~2025)’에 최종 반영될 수 있도록 요청했다는 의정활동 자료를 냈다.

각 의원들이 조금이라도 관여한 예산에 대해서는 공적으로 내세우려다 보니 일부 사업은 여러 의원의 실적 자료에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홍보 예산, 만덕3터널 건설 예산 등은 복수의 부산 의원들이 ‘내 실적’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 전체 예산은 여야 모두가 공동의 노력으로 달성하는 것이니까 일부 ‘지분’을 주장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며 “그런 보상이라도 있어야 내년에는 더 노력하지 않겠느냐”고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도를 넘은 공치사는 지역 유권자들을 현혹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수억 원대의 소소한 사업은 의원 개인의 역량이 좌우하지만, 대형 인프라 사업의 국비 확보는 정부 정책과 긴밀히 연동되고 지역 정관계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누군가가 공을 독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유권자들도 숫자에 현혹되기보다는 지역구 의원이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추진한 사업이 예산으로 현실화됐는지를 잘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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