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 속출, 제도 개선 ‘목소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 3일 실시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자가 속출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특히 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직업계고, 예체능고, 검정고시 출신 등이 응시방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잦다. 이정도면 수능 제도의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교육부는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제도 개선에 아예 손을 놨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과목 순서 어김·책상 위 시험지 2장 등
수능 무효 부정행위의 절반 차지
시험 익숙지 않은 직업고 등 위반 잦아
답안지 분리·해당 과목만 0점 처리 등
제도 개선 교육부 손놔 희생자 양산 비판


■코로나19 탓에 더 늘었다?

부산에서 4교시 응시방법을 위반해 부정행위자로 간주된 수험생은 모두 14명이다. 이중 10명은 시험지 2개를 동시에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문제를 풀다 적발됐다. 나머지 3명은 제1선택 과목 시간에 제2선택 과목 문제를 풀었고, 1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문제를 풀었다. 부산에서 수능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 건수는 2017년에 6건이었지만, 2018년에는 무려 17건이나 쏟아졌다. 지난해는 10건으로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증가한 셈이다.

부산 외에도 강원도에서 수험생 9명, 충북에서 3명, 경북에서 3명, 경기도에서 1명 등이 4교시 응시방법 위반으로 수능이 무효 처리됐다. 현재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를 집계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수능 시험이 무효처리된 부정행위는 모두 1173건이다. 이중 4교시 응시방법 위반이 522건으로 44.5%를 차지했다. 이어 전자기기 소지가 401건(34.2%), 시험종료 후 답안작성이 182건(15.5%) 등의 순서 부정행위가 많았다.

부산시교육청 권혁제 중등교육과장은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비대면으로 주의사항을 알려서 그런지 수험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헷갈리는 수능 4교시

수험생들은 수능 4교시 때 한국사와 탐구과목(사회탐구·과학탐구·직업탐구)의 시험을 순서대로 봐야만 한다. 우선 한국사 시험지를 받아 30분 동안 풀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 감독관이 한국사 문제지를 회수하고 탐구과목 문제지를 배부한다. 수험생은 많게는 탐구과목 2개 시험을 30분 간격으로 풀어야 한다. 먼저 30분 동안 제1선택 과목을 보고, 이어지는 30분 동안 제2선택 과목 시험을 푼다. 제1선택 과목 시험을 볼 때 수험생들은 제2선택 과목 시험지를 책상 안에 넣거나, 바닥에 내려놓아야만 한다.

그런데 제1선택 과목 시간에 제2선택 과목 시험을 푼다거나 제1선택·제2선택 시험지를 동시에 올려놓고 시험을 치면 부정행위가 돼 전과목 0점처리된다. 또 탐구영역 3과목 답안지는 한장에 작성하도록 돼 있어, 각 과목 30분 시험시간에 다른 과목을 수정하는 경우도 부정행위다.

그나마 올해에는 해당 시험지만 책상에 올라가 있지 않다면, 다른 과목 답안지에 실수든, 고의든 OMR 마킹을 해도 허용하는 수준으로 규정이 조금 완화됐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이 역시 부정행위였다.

시험 순서를 바꾸거나, 동시에 풀면 왜 부정으로 간주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는 대학별로 탐구영역 과목 반영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대학은 선택과목 하나만 반영하는 곳도 있다. 수험생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학 요건을 충족하면 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선택 과목 하나만 집중하고, 나머지를 포기해도 된다. 이렇게 되면 어떤 수험생은 한 과목을 두고 배정된 30분만 시험을 봐야하지만, 어떤 수험생은 60분 동안 시험을 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룰만 공정하면 끝?

문제는 수험생들이 가끔 긴장한 나머지 실수로 과목 순서를 어겨서 시험을 보거나, 자기도 모르게 시험지 2장을 책상 위에 올려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4교시 응시방법 위반 부정행위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직업계고나 예체능고, 검정고시 출신 또는 군에서 전역하고 다시 응시하는 수험생들이다. 이들은 시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인문계 고교 재학생에 견줘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이 실수한다 하더라도 ‘공정성 프레임’에 갖혀 있는 현실상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일각에서는 4교시 응시방법 위반 관련 감독관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4교시에는 감독관이 3명 들어간다. 예비령이 울리고 시험이 실시되기 까지 10분의 시간이 있다. 이때 감독관이 제1선택 시간에 제2선택 과목이 수험생 책상에 올라와 있는지, 또는 시험지가 2장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면 상당수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경혜여고 권태윤 교사는 “인문계 고교 학생일지라도 산업학교에 위탁돼 직업 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현행 수능 시스템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면서 “평소에는 미용이나 제빵 기술을 익히다 수능을 치려 하니 복잡한 4교시 응시 요령이 잘 숙지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브니엘고 장미 교사는 “한 과목 시험을 보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매우 짧다. 한마디로 정신 없이 시험을 봐야만 한다”면서 “특히 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복잡한 응시 방법까지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당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육청에서는 오래전부터 수능 4교시 시험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건의해왔다. 부산시교육청 강은영 장학관은 “각 과목의 답안지를 분리하거나 해당 과목만 0점 처리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동기에 관계 없이 결과론적으로 따져봤을 때 겉으로 보이는 행위가 규정에 위배된다면 어쩔 수 없다”면서 “부정행위 사례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봐야만 한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