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연기자의 사생활과 예능 프로그램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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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배우·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인혜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고? 다시 한 번 고민해 봐.”

“예능에서 너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면 시청자들이 드라마 볼 때 네가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볼 수 있겠니? 배우는 신비감이 있어야 하는 거야.”

10년 전, SBS에서 방영되었던 ‘골드미스가 간다’라는 예능 프로그램 첫 고정 출연 제안을 받고 고민이 많았다. 그때 조언을 구했던 대부분의 연기자 선배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반대하셨다. 당시에는 같은 TV 출연자라 하더라도 연기자, 예능인, 개그맨, 가수 등 출연 분야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물론 연기자 중에 노래 실력이 뛰어나 가수를 병행하거나 가수가 드라마에 캐스팅 되어 연기를 선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연기자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은 내 직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 선을 넘어가는 일로 생각해서 같은 연기자들에게도 예능인들에게도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 일쑤였던 것이다.

연예인 다른 장르 출연 터부 깨져
‘우리 이혼 …’ 종편 1위 시청률
이혼 연기자 부부 관찰예능까지
남자 배우, 육아 모습 전격 공개
인간적 모습에 출연작 등 영향
순수한 의도가 악용되지 않기를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드라마나 영화 홍보를 위해서 연기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덕분에 ‘연예가중계’나 ‘섹션TV 연예통신’ 등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인터뷰에서나 볼 수 있었던 톱스타들의 모습도 이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다. 미션을 해결하는 ‘런닝맨’, 퀴즈를 푸는 ‘유키즈 온 더 블록’ 등 다양한 포맷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기자들의 꾸밈 없는 모습들이 그대로 보여진다. 인터뷰 장면에서 느껴지던 거리감은 온데간데없고 인간미 있는 친근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톱스타들은 신비감이 생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인터뷰조차 거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요즘은 반대이다. 차승원, 유해진, 이서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해 직접 요리를 선보이며 세끼 식사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송일국, 봉태규, 김정태 등 결혼한 남자 연기자들이 자신의 아이를 공개하고 육아하는 모습을 스스럼없이 선보인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신비감을 원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연기자의 진솔한 모습을 보고 도리어 그들이 출연한 작품에 호감을 보이기도 하며 더 관심을 기울인다. 연기자들 또한 예능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통해 출연작이나 광고가 결정되기도 하는 등 새로운 기회의 폭을 넓히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싱글 남성 연기자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는 ‘연애의 맛’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이필모 연기자가 진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되는 등 연기자의 사생활에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사랑받던 배역의 모습과 실제 연기자의 모습이 일치하도록 강요받던 예전과는 다르게, 연기자의 작품 속 모습과 개인 일상의 모습을 각각 인정해 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연기자는 현실에서 절대 만나 볼 수 없는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존재가 아닌, 가까운 이웃처럼 편안하게 다가와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존재로 변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많은 연기자들도 사생활 노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서 연애, 결혼, 육아 등 방송 프로그램을 통한 일상 공개가 잦아지게 되었다. 유튜브 등 개인 채널을 직접 개설하여 집들이, 요리, 취미 생활, 친한 동료와의 만남과 같이 자신의 생활을 자유롭게 보여 주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혼한 연기자 부부가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 한 집에서 생활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이혼’이라는 기사가 나면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관심이 사그라들 때까지 쉬어야 했던 예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이다. 이혼한 부부끼리 방송국에서 마주치는 일은커녕 서로 이름조차도 언급되지 않도록 조심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방송 프로그램에 동반 출연해서 부부였을 때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여자 이야기부터 과거 서운했던 이야기들이 낱낱이 공개된다.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유명 연기자 부부의 출연으로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상상 이상이다. 겨우 3번 방송했는데 본방송 시간대에서 종편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처럼 요즘 시대는 연기자들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끄는 강한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에서 연기자 자신도 모르게 안 좋은 이미지를 낳을 수 있는 위험성이 늘 도사리고 있다. 사실 연기자가 방송을 통해 개인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시청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순수한 의도가 부디 시청률을 올리고 인기를 끄는 방편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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