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온정'이라는 이상한 중독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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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독자부장

이란 책을 쓴 신영복 선생은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나은데, 교도소의 사람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한다”고 썼다. 여름이라면 36.5도의 체온은 좁은 공간에서 ‘열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겨울철엔 원시적 우정을 느끼게 하는 ‘온기’라는 것이다.

언제 그렇게 더웠느냐는 듯이 차가운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얼굴과 목깃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는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도 마음까지 얼지 않으리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은, 작은 손난로에서 큰 빌딩까지 데울 만한 크고 작은 온기와 열기가 우리 이웃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겨울 왔지만 크고 작은 온정
전염병 이길 정도로 선한 마음 전파
나눔은 가진 게 적어도 누구나 가능
전염병 등 혹독한 시절 이겨 낼 희망

바르게살기운동 부산광역시협의회 김창균 회장과 김민자 여성회장은 세밑 홀로 노인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을 전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여성회원 20여 명과 함께 회장단이 함께 만든 김장김치 600포기는 지역 어르신들에게 골고루 전달됐다. 절임 배추는 김민자 회장이 기증하고, 이 소식을 들은 김창균 회장은 앞으로도 여성회 봉사에 물심양면 지원을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경성리츠 채창일 대표는 후원금 5000만 원을 선뜻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에 기증했다. 365건강기부 올집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체중 1kg을 뺄 때마다 경성리츠가 따로 적립한 금액을 한데 모았다. 채 대표는 “프로젝트 참가자의 마음을 모아 자신의 건강도 지키면서 어려움에 부닥친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어 어느 때보다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산시설공단은 이번에 특별히 추연길 이사장과 김동우 노조위원장이 나눔의 손을 맞잡았다. 공단은 500만 원을 내고 노조는 노조원 등 20여 명의 사원들이 스스로 나서 김치와 떡국 떡을 각 가장에 배달하는 나눔 봉사를 펼쳤다. 각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만큼 방역을 철저히 해 방문자와 시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은 부산의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해 성금 3억 원을 부산시에 쾌척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자영업자가 어렵게 되자 전국 최초로 상가 임대료를 3개월간 절반만 받으며 지역 소상공인과 상생한 바 있다. 권 회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마저 위축될까 봐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부산소망교회, 문현성결교회 신도 등은 필리핀 태풍 이재민을 돕기 위해 3000여 개의 구호품을 최근 선적했다. 필리핀은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산업연수생도 15만여 명에 이르러 우리나라와 밀접한 나라이다. 이들 교회는 필리핀 루손지역 이재민들에게 의류와 신발, 비누, 치약, 수건 등 생필품을 보냈는데 4주 후면 그들에게 전달된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다.

경남 창원의 하충식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은 특이한 지병이 있다. 참 걸리기도 힘들고, 낫기는 더욱더 힘들다는 ‘기부 중독’이다. 하 이사장은 지역 중고생들의 교복비로만 10억 원 넘게 기부했고, 지역 각 대학의 발전기금도 수십억 원이나 약정했다. ‘누구도 사람을 괄시해서는 안 되고, 이웃의 가난을 외면해서는 더욱 안 된다’는 어머니의 밥상머리 가르침을 새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 이사장은 “나눔이라는 것이 비움의 시작이 아니라 채움의 시작”이라고 했다.

김해시에서 중견 가구기업을 운영하는 박명률 라비채 회장은 고향 통영의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최근 기부했다. 20명에게 50만 원씩을 보냈는데 “비록 적은 돈이지만, 후배들이 나중에 자라서 나눔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한 바이러스의 전파자이다.

최근 한 주 동안 접한 기억나는 온정의 사연들이다. 따뜻한 이야기를 자꾸 들으니 중독된다. 곰곰이 생각하면 결코 부자이거나, 많이 가져야만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추운 계절이 있지만, 또 해마다 온정이 있어 마음은 얼어붙지 않는다. 세상은 이렇게 유지된다.

이즈음에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부산 지역에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부산혈액원의 혈액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11월 중순 이후 단체헌혈이 대거 취소돼 수급 상황이 심각하다니 걱정이다. 부산혈액원 관계자는 “지금이 헌혈이 절실한 시기인 만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면서 헌혈에 대한 거리를 좁혀 생명 나눔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어쩌면 나눔은 시지프의 신화처럼 끊임없이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옮겨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지만, 사람들은 그 비참한 ‘형벌’을 오히려 ‘행복’으로 승화했다. 그래서 우리는 코로나19이든, 추위든, 위기든 다 이겨낼 테다.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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