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수 있는 날 2주에 하루뿐… 나도 모르게 울음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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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눈물] 방역 최일선 보건소 의료진

7일 부산 사상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의료진들이 비닐천막 안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코로나19 방역의 최일선에 있는 이들이 보건소 의료진이다. 하지만 그들도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점점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인력이 부족해 방역 업무가 주말까지 이어지기가 예사다. 여기에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민원인들의 불만까지 그들을 힘들게 한다.

부산의 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3년 차 의무사무관 A 씨. 그는 요즘 평균 ‘주 6.5일’을 근무한다. 한 주는 일주일까지 포함해 7일 출근하고, 그 다음 한 주는 일요일만 쉬는 식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 초기보다는 나아졌다. 처음 4개월간은 휴일 없이 매일 출근했다.

거의 매일 야근에 점심시간 10분
민원인들 막말·욕설도 스트레스
인력 부족한데 업무 폭증 ‘번아웃’

예전엔 증상 있는 환자라도 진료를 통해 검사 여부를 판단하는데, 최근에는 증상만 있으면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한다. 일상적인 비염환자가 오더라도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선별진료소는 점심시간이 별도로 없다 보니 식사하거나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할 때가 많다.

A 씨는 “의사 판단으로 안 해도 될 것 같은 사람들도 무조건 하다 보니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며 "점심시간 10여 분 정도 후다닥 뛰어가서 식사하지만 민원인의 항의에 먹다가 연락받고 뛰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A 씨를 비롯한 보건소 의료진을 괴롭히는 건 방역 업무만이 아니다. 지친 의료진에게 쏟아지는 민원인의 막말과 갑질은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보건소 업무 특성상 민원인들이 의료진을 ‘의사-환자’ 관계로 대하기보다는 ‘공무원-민원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A 씨의 경우 점심 식사를 마치고 왔다가 “너희는 왜 밥을 먹느냐?”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해도 되느냐"는 막말을 들은 적도 있을 정도다. 검사 대상이 아닌 민원인이 찾아와 다짜고짜 검사를 요구하며 욕설을 퍼붓는 것도 예사다. A 씨는 “보건소는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됐다. 요즘도 주 6일 이상 근무하는 것 같다”며 “얼마 전에는 집에 도착해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른 보건소에서 근무 중인 8년 차 의무사무관 B 씨도 거의 매일 야근 중이다. 검체 채취, 역학조사 등 코로나19 업무와 기존 업무를 병행하는 탓이다. B 씨는 “보건소마다 코로나19에 전력 대응을 하는 바람에 일반 진료와 금연 단속 등의 기존 업무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왜 다른 업무는 안 하느냐'며 따지는 민원인이 생긴다. 인원이 부족해 업무가 가중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보건소 현장에서 과도한 피로를 호소하는 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부산시는 지역 보건소에 법적으로 정해진 최소 전문 인력조차 배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역보건법 ‘전문 인력의 면허 또는 자격의 종류에 따른 최소 배치 기준’에 따르면 광역시 구 단위 보건소의 최소 인력은 의사 3명, 치과의사 1명, 한의사 1명, 약사 2명이다. 부산 지역 16개 구·군 보건소 중 이 기준을 충족한 곳은 없다.

보건소 인력난은 예산 부족과 젊은 의사들의 근무 기피가 주된 원인이다. 애초에 예산 자체가 빠듯한 데다 젊은 의사들이 임금이 적고 현장 근무가 많은 보건소 근무를 꺼리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19를 계기로 장기적인 의사 충원 계획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목 전국보건소협의회 회장(부산 남구보건소장)은 “앞으로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중증 환자는 병원에서, 경중 환자는 집에서 치료해야 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며 “이럴 때 접촉자 동선 분류와 이탈자 관리까지 해야 하는 보건소 업무 강도가 더 높아질 게 뻔한데 의사 충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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