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어머니의 사진, 역사의 한 장면,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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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가족의 흔적, 그림으로 만나다.

홍순명 작가는 “내년에 구순을 앞둔 어머니와의 관계가 늘 숙제였다. 스무 살도 아니고 60대가 되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지만 주변의 많은 이들이 공감하더라”고 전했다. 장남인 작가에게 거는 어머니의 믿음과 기대.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모자 사이에는 늘 의견충돌이 존재했다.

정치·사회적 주제를 주로 다루던 홍 작가는 2018년 이라크 작가 히와 케이를 만났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함께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목숨을 걸고 작업을 하고 있더라. 나도 더 신중하게 작업하자 생각하니 시작을 주저하게 됐다.” 대신 그는 ‘가족’에 눈을 돌렸다. ‘언젠가는 해봐야지’ 하며 미뤄왔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살풀이하듯 그림으로 그렸다.

어머니와의 관계 살풀이하듯 그려
그림 3점 중첩해 삶의 흔적들 표현

홍순명 개인전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는 그 살풀이 결과물을 보여주는 자리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조현화랑 달맞이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국내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이다.

홍 작가의 작품에는 3개의 그림이 완전한 형상으로 들어가 있다. 우선 어머니의 앨범에서 발췌한 사진을 그린 것. 처음에는 어머니 사진으로만 작업하다 어머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아버지, 친척들이 등장하는 사진까지 확장했다. 세피아 색상의 아크릴화에는 어머니가 다닌 서울여상 운동회날 구름 관중이 모인 장면, 아버지가 황학정에서 국궁하는 모습 등 시대의 풍경도 담았다.

사진 그림이 완성되면 다시 위에 테이핑 작업을 한다. 작가의 어머니가 태어난 1932년부터 자신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1985년까지. 한국전쟁이나 제3한강교 기공식 등 한국사의 주요 장면 사진에서 실루엣을 따냈다. 실루엣에 의해 남겨지고 가려지는 부분은 사회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미쳤을 영향을 상징한다.

홍 작가는 “그게 어떤 이미지인지는 안 중요하다. 수백 개의 실루엣을 만들어서 계속 대보고, 사이즈를 키워보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살릴 수 있는 이미지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보존할 부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부착하고 그 위에 다시 작가 자신과 관계된 그림을 그린다. 마지막은 유화 작업이다. 그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작가도 애가 탄다.

“이상하게 결과를 짐작할 수 없다. 마스킹 테이프를 뜯어내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홍 작가의 이야기는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를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준다. 더불어 인생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온전한 세 개의 그림이 함께 모여 완성한 홍 작가의 그림은 얼룩이나 상처만 남은 상태가 된다. 그것은 현대화된 세대를 상징하는 작가, 근대화 세대를 대표하는 어머니,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다. 또 개인사와 사회사가 얽히고설키는 것이 삶이며,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쌓여 한 사람을 완성해 나감을 보여준다.

부모님 사진 위에 홍 작가 부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겹치고, 친척 단체 사진 속 아버지의 모자와 파리 유학 시절 홍 작가의 모자가 닮았다. 어머니의 20대 사진과 작가의 40대 후반의 사진이 비슷한 느낌으로 어우러진다. 부산에 거주하는 홍 작가의 어머니도 전시를 봤다. “작업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좋아하셨어요. 그림 속에 업힌 아이가 사촌 형이라고 알려주시는 등 옛날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죠.”

홍 작가는 이번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주목했다.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다 보니 저를 알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요. 인사치레가 확 줄었어요. 아무 말도 못 하겠다는 것은 흔히 보지 못한 것에 대해 판단을 보류한다는 의미겠죠. 그런 상태라는 것은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2021년 1월 3일까지 조현화랑 달맞이. 051-746-866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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