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 항공사 없는 가덕신공항 성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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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경제부 산업팀장

노무현 정부의 큰 성과인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부산 사람들이 남몰래 속앓이를 하는 지점이 있다. 당시 금융 공기업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뿌리를 내렸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는 한 곳도 따라오지 않았다. 금융 공기업 사람들이 부산에 정착하려고 쏟은 노력을 모르지는 않지만 부산의 기대는 훨씬 컸다.

금융 공기업들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부산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부산 문현동이 서울 여의도에 버금가는 금융가로 바뀌어 새 일자리도 생기고 기업, 투자자들이 돈을 들고 몰려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BIFC 가자”는 손님 요청에 “어디요”라고 택시 기사가 되물으면 “문현동 이마트 가자”고 고쳐 답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게 지금 현실이다. 문현동의 초고층 건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대다수 시민들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금융 중심지’ 부산의 꿈은 여전히 먼 일이다.

신공항, 금융 중심지 ‘닮은 꼴’ 안돼
성공 전략 논의할 테이블 마련부터
동북아 물류도시 목표 향해 나가야
최우선 과제 떠오른 지역 항공사 유치

요즘 부산 사람 마음을 다시 한 번 들썩이게 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가덕신공항 얘기다. 부산 사람들은 가덕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금융 중심지 유치 당시를 훌쩍 뛰어넘는 노력을 하며 험난한 길을 걸었다.

혹시 일이 틀어질까, 가덕신공항이 가시화되는 지금 시점에도 누구도 펄쩍 펄쩍 뛰며 기뻐하지 못한다. 다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대구·경북의 시비, 수도권 언론의 딴지, 국토부를 위시한 정부 일각의 외면까지 넘어야 할 걸림돌들이 숱하기에 조심 또 조심이다.

이렇듯 민감한 시기이지만 마냥 앉아서 기다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가덕신공항 시대를 차근차근, 세밀하게 준비해야 할 출발점에 섰다. 가덕신공항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 가덕신공항을 그토록 열망했던 이유를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에 던져지는 셈이다. 순진하게만 접근하던 금융 중심지 사례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기업과 대학, 공공기관마다 가덕신공항 성공 전략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고 새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원점에 서서 가덕신공항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를 찬찬히 짚어 보자. 돗대산 참사를 겪은 동남권 주민들은 안전한 비행길을 원했고, 가덕신공항을 그 정답으로 봤다. 아시아 일부 도시를 제외한 지역으로 가려면 돈과 시간을 더 들여 인천으로 가는 불편이 쌓이고 쌓여 신공항 논의가 더 타올랐다. 지역 기업들은 물류 비용을 낮추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보고 가덕신공항을 외쳤다.

크게 보면 동남권을 위시한 남부권은 가덕신공항에서 추락한 지역 경제를 되살릴 새 성장 동력을 만들 기회를 엿보고 있다. 24시간 운항 가능한 공항이 생기고 항만·육상이 연계된다면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주 기업들도 부산 거점 글로벌 물류체계를 새로 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덕신공항에서 동북아 물류도시의 꿈을 이루려는 것이다.

가덕신공항 성공 전략을 논의할 테이블에 올릴 첫 주제로 ‘지역 항공사 유치’를 제안한다. 가덕신공항 유치가 확정도 안 됐는데 성급하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회는 우리가 원할 때 오지 않는다. 때마침 어려움을 겪던 항공업계 재편이 시작됐고, 이는 신공항 유치를 눈앞에 둔 부울경이 당장 급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됐다. 가덕신공항이 성공하려면 연고 지역 항공사가 선결조건이다. 참고할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미국만 해도 애틀란타공항은 델타 항공이, 시카고공항은 유나이티드 항공이 메인 허브 공항으로 삼아 상호 발전하고 있다.

때마침 상공계와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서 통합 LCC(저비용 항공사) 본사 유치 목소리를 모아가고 있다. 이들은 ‘부산’ 이름이 들어간 에어부산 존치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고 에어부산 중심의 LCC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에어부산이 해 온 일을 보면 지역 항공사는 더 절실해진다. 다른 항공사들이 수익만 따져 노선 만들었다가 없앴지만 에어부산은 김해~김포 노선을 비롯해 다수의 적자 노선을 유지했다. 새로 뚫은 노선도 적지 않다. 중국의 시안 옌지 장자제 하이커우, 대만의 가오슝, 베트남 다낭, 몽골 울란바토르를 부산에서 비행기로 바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에어부산 덕분이었다. 최근 4년간 에어부산이 채용한 동남권 인재 비율이 70%를 넘는다.

에어부산이 간판을 내리면 사실 답이 없다. 새 항공사 설립은 정부에 요구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때를 놓치기 전에 동남권이 다시 뭉쳐야 한다.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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