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정치적 부족주의’에 매몰된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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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분노의 시대다. 2020년 12월 10일 어제는 여러모로 기록적인 날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 개최,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개정안 국회 전격 통과. 여의도에 협치와 통합이 아닌, 서로를 배제하고, 증오하는 기운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국민의 가슴팍엔 분노와 갈등이란 단어가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었다. ‘우리 대 저들’의 이분법 아래 우리 편이 아니면, 동료나 동지로 보지 않는다. 정치적 패거리주의에서 유대와 결속은 찾기 힘들다. 공동체 통합의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윤석열 징계위 개최, 공수처법 통과
여의도엔 포용 아닌 배제와 분노만

갈등 통한 지지층 결집 선거공학
자기편 똘똘 뭉치고, 상대방은 공격

백신·검찰개혁 등 보편 논쟁은 뒷전
대통령 포용·통합 리더십이 해법

‘우리가 남이가’란 건배사가 유행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면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고 했던 데서 비롯됐다. 호남을 배제한 이런 정치공학은 영남권 지역주의를 이끌어내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 후 ‘우리가…’ 패거리주의는 IMF 사태와 소득 양극화,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죽음, 구속,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나쁘게 진화했다.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계급과 갈등, 이념을 활용한 정치권력들은 세상을 ‘우리 대 저들’로 갈랐다. 이젠 지지 정당, 사는 지역과 아파트 평수, 직업과 수입에 따른 계층, 수도권·비수도권 등으로 나뉘었다.

‘부족(tribe)’의 시대다. 21세기를 맞은 한국이 소위 원시 부족도 아닌 ‘정치적 부족주의’ 시대를 맞고 있다. ‘대깨문(문 대통령 극성 지지층)’ ‘태극기’ 뉴스가 자고 나면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현실에서 '정치적 부족주의'는 ‘우리 대 저들’로 세상을 편 가르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징벌하는 세태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다들 자기 집단이 공격받고 괴롭힘을 당하고 학대받고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면서 현대 미국 사회를 ‘정치적 부족주의’로 규정했다. 에이미 교수의 지적은 한국 사회를 신랄하게 분석한 듯해 섬뜩하다. ‘정치적 부족 전쟁’에 나선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거칠다. 그 메시지는 국민 전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적들에게 돌을 던져라’ ‘내가 이렇게 잘 싸우고 있다’는 자기 진영만을 향한 전쟁 노래다.

셈법도 숨어있다. 40%의 팬덤 지지층만 확보하면 정권 장악이 가능하다는 선거꾼들의 정치공학이다. 콘크리트 지지층만으로 정권을 잡으면,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과학적 신념 때문이다. 국민 통합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효율적 계산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유튜브와 온라인 뉴스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확증 편향’ 세태도 한몫 거들고 있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한국 사회에서 공유할 보편적인 가치와 함께 풀어야 할 현안은 없을까? 검찰개혁. 국민 대다수가 염원하고,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한결같은 가치였다. ‘청와대의 로펌’ ‘권력의 시녀’로 폄하했던 검찰을 어떻게 ‘살아있는 권력까지’ 소신껏 수사하게 할 것인가, 공수처는 누가 견제할 것인가란 보편적 논쟁은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온데간데없다. 영국은 코로나19 백신을 첫 접종한 12월 8일을 승리의 날(V-Day)로 명명했다. K방역 성공만 외치던 한국 정부가 ‘선진국에서 충분히 안전성을 검증한 뒤 접종’ 기자회견을 할 때 미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백신 접종 계획 외신이 쏟아졌다. 한국이 유일하게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연내 승인조차 불투명하다. 또다시 휴업과 실업을 밥 먹듯 하며 1년을 숨죽여 살아야 하나? 정부의 무능으로 그 힘겨운 삶이 반복된다면….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법치주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는 4년 전 광화문 광장에서 공유했던 보편적 가치다. 광장을 밝혔던 촛불은 꺼졌다. 광장의 분노와 광장의 가치를 진영 논리가 아닌 교류와 발전, 화합의 에너지로 바꿀 때다. 그 길이 정부가 힘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염치를 차리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에서 “사회를 분열시켜 갈등의 늪으로 몰고 가는 정권이 더 이상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상생과 통합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다시는 대결과 갈등의 리더십으로 이 나라의 정권을 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수”라고 역설했다.

대통령이 통합 리더십과 보편적 가치로 진영 논리와 ‘정치적 부족주의’ 담장을 깨야 한다. 그래야 국가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다. 온전히 대통령의 책무다.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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