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국민성, 단정하지 말고 ‘복합적 이해’ 필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상현 /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

‘한국 사람은 열정적이지만 조급하다.’ ‘일본 사람은 작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단정적인 말은 종종 하곤 한다. 얼핏 이 말은 한국과 일본 사람의 기질을 잘 규정짓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말처럼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왜냐면, 규정에 반대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현재 문화 탐험, 감성 기질 추적
공예품 토대 세 나라 문화 유전자 연구
공동체 심리·역사, ‘밀고 당김’ 메커니즘
문화 특징, ‘길항’ 관점에선 달라질 수도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은 과거와 현재의 문화를 탐험해 한·중·일 세 나라의 감성 기질을 추적한다. 한데 안타고니즘(Antagonism·길항작용)이란 말이 어렵다. 주로 이 말은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서 두 개의 요인이 작용해 서로 그 효과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공예품을 토대로 세 나라의 문화 유전자를 연구해 온 저자는 이 개념을 차용해 삼국의 감성 기질을 ‘밀고 당김’의 메커니즘을 통해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술품, 건축물, 복식과 축제, 문화 현상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룬다.

저자는 한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공동체의 심리와 역사는 서로 밀고 당기는 길항작용으로 이뤄진다고 본다. 그렇다면 중국인의 감성적 기질에서 밀고 당김은 뭘까? 저자는 ‘개방과 폐쇄’를 얘기한다.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토루(土樓)는 중국의 집단주택 단지다. 큰 토루에는 수백 명이 살았다고 하니, 온 마을 사람이 한집에 사는 셈이다. 저자는 이를 폐쇄적 기질의 흔적으로 본다. 폐쇄적 감성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개방적 감성도 있어야 한다. 중국 윈난성 숭성사의 초대형 삼탑을 보자. 숭성사 세 탑 가운데 가장 높은 사각탑은 13층, 69.13m에 이른다. 탑은 멀리 보기를 바라는 전망(개방)에 대한 욕구가 반영됐다. 토루와 삼탑을 통해 중국 문화에서 폐쇄와 개방의 줄다리기가 계속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인의 기질은 ‘축소와 확장’으로 풀어낸다. 부츠단에서 축소를 읽는다. 부츠단은 불단의 일본 발음. 절에 있는 대웅전(일본에서는 대불전이라고 함)을 축소해 놓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이 일본의 정원이다. 대표적인 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일본 교토 료안지의 정원이다. 축소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은 확장.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의 노사나불은 부츠단과는 반대인 확장의 감성적 기질이 작용했다. 도다이지는 세계 최대 목조건축물이다.

대불전 높이는 47.5m, 대불전 안 노사나불은 높이 14.98m에 달한다. 때론 절대적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사찰을 축소했으면서, 왜 이렇게 거대한 사찰을 짓는 것일까? 저자는 “전혀 다른 행동 같지만, 통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한 밀고 당김으로 보면 설명된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기질은 ‘덤벙과 강박’에서 읽어낸다. 천연주의, 비 작위, 겉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본질주의와 같은 태도에서 나온 것이 덤벙의 문화다. 이를 잘 표현해 주는 게 바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김후신의 ‘대쾌도’. 18세기 작품으로 격식을 벗어던진 술자리의 자유로움을 천진하게 그렸다. 풍속화나 실생활에 쓰인 분청자기 등에서 이런 덤벙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덤벙이 있다면, 강박이 있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신임의 초상화 ‘기해기사계첩’을 보자. 화원 김진여가 그린 이 그림에는 미화나 과장이 없다.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과 주름, 내려앉은 눈꺼풀 등은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다. 대쾌도를 한 단어로 표현할 때 ‘덤벙’이었다면, 신임의 초상화는 ‘강박’이 적당해 보인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에서는 정성과 정교함 속에서 강박적 불심이 읽힌다.

저자는 때론 미술관과 박물관의 도슨트가 돼 우리를 안내한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상류층의 문화부터 서민의 문화까지, 한·중·일 세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이 나라 사람의 기질은 어떻고, 저 나라의 국민성은 어떻다.’ 근래 한·중·일 세 나라는 이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고, 때로는 혐오의 감정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곤 한다. 이해는 줄고 오해가 늘면서 서로를 단정하는 말만 늘어났다. 책은 서로를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이 같은 편리함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단정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이웃 나라를 이해하려는 시도. 이게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다.

저자는 “지금까지는 기질론이 주는 불편함은 기질을 하나로 단정해버리는 경향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그렇듯 문화적 특징을 길항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면서 ‘열정과 신명의 문화’를 가질 수 있듯이. 더하여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기질론은 우열을 가리려는 준비가 아니다. 도리어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살펴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상현 지음/다돌책방/360쪽/6만 5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