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배내골’ ‘범내골’ 표기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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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복 소설가

전 국토의 70%가 산간지대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지명 가운데에는 유달리 산골짜기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고장만 하더라도, ‘얼음골’을 위시하여 ‘범밧골’ ‘쇠지밋골’ ‘용솟골’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이다.

그런데 이들 지명에서 한 가지 공통되는 음운현상은, ‘어름꼴’ ‘범바꼴’ ‘쇠지미꼴’ 등에서 보듯 ‘○○골’ ‘△△골’이 ‘○○꼴’ ‘△△꼴’로 발음되는, 이른바 ‘사잇소리현상’이다.

사잇소리현상이란, 우리말의 합성명사에서 앞말의 끝소리가 모음이나 ‘ㄴ’ ‘ㄹ’ ‘ㅁ’ 따위의 울림소리로 끝나고, 뒷말의 첫소리가 ‘ㄱ, ㄷ, ㅂ, ㅅ, ㅈ’으로 시작하는 경우, 그 뒷말의 첫소리가 특별한 이유 없이 ‘ㄲ, ㄸ, ㅃ, ㅆ, ㅉ’ 등의 된소리로 나거나, 모음이나 ‘ㄴ, ㅁ’ 따위의 울림소리로 시작하는 경우, ‘ㄴ’이나 ‘ㄴㄴ’소리가 덧나는 현상으로, 이를 나타내기 위해서 ‘나룻배, 냇가, 촛불, 콧등, 제삿날, 냇물, 나뭇잎, 잇몸’ 등과 같이 ‘사이시옷’을 첨가하는 것이 원칙이다.

단, 표기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예외 규정도 있으니, ‘경복여고길=경복여고낄’처럼 새로운 주소에 포함된 도로명과 두 음절로 된 한자어의 경우엔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등 여섯 단어에만 국한하고, ‘대가(代價)’, ‘사건(事件)’, ‘초점(焦點)’, ‘효과(效果)’ 등에서 보듯 그 나머지의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잇소리현상’을 염두에 둔다면, 누구나 쉽게 그 오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배내골’과 ‘범내골’이 바로 그것이다.

하루는 마음먹고 배냇골 현장을 직접 한번 답사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배내골미래산장’, ‘배내골밀양댐’, ‘배내골홍문관’ 등, 온통 ‘배내골○○○’ 일색일 뿐,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제대로 된 상호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도로명인 ‘배내로’를 위시하여 ‘배내체험장’, ‘배내캠핑장’, ‘배내팬션’ 등의 간판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뒷말의 첫소리가 ‘ㄲ’ ‘ㄸ’ ‘ㅃ’ ‘ㅆ’ 등의 된소리나 ‘ㅊ’ ‘ㅋ’ ‘ㅌ’ ‘ㅍ’ 등의 거센소리일 때에는 사잇소리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첨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씩 이용하는 부산지하철 1호선 승객들, 하루에도 수백 명씩 드나드는 양산 배냇골 관광객, 등산객들 가운데에는 필시 국어학자, 국어교사, 신문 기자들도 많을 터인데, 어째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바로잡히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어찌 비단 ‘배내골’, ‘범내골’뿐이겠는가.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오류들이 범람하고 있을 것인가!

필자는 근년에 국토건설부를 비롯하여 부산시청, 양산시청, 울주군청 등에 전화를 걸어 문제의 ‘배내골’, ‘범내골’ 표기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바로잡아야 옳지 않겠느냐고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씁쓸했다.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정서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한글맞춤법통일안’ 어디에 그런 규정이 있느냐, 사잇소리 규정을 들어가며 아무리 설득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 몰라라 식’으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만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다. 쓰레기는 치우면 그만이지만, 한번 잘못 표기된 이정표나 간판 따위는 자손만대에 길이길이 전해질 흉물인 줄을 왜들 모르실까!

관계 당국의 각성과 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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