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물은 셀프입니다 / 이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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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드럽고 상냥한 교육입니까

이 얼마나 갈증난 명사입니까

적의는 사라지고 말랑한 혀는 금방

분홍 말을 하는데

물 한 잔 가지고 벌컥 할 수도 없고

몸은 공손히 일어나 모범적인 사회인이 되는데

그래서 평범한 국밥을 먹는데

명령어의 힘을 이렇게 경험하며

반찬은 셀프입니다

벽에 붙은 인사처럼 뚱뚱하게 웃는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잔반 없는 날입니다

민주시민이 됩시다

윙크하는 벽



커피는 셀프입니다

안녕히 가시라는 벽에게

안녕히 계십시오 공손한 우리는

언제부터 벽과의 소통이

이렇게 원활했습니까

-이효림 시집 중에서-


‘언제부터’라는 말에는 자조적인 냉소가 스며있다. 물도 스스로 가져다 마시고 반찬도 자율적으로 덜어다 먹고 식사 후 커피도 맘대로 빼 마실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웬 떡이냐 하고 듬뿍 가져다 먹지만 ‘민주시민이 됩시다’라는 말에 슬그머니 손에 힘이 빠진다.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벽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벽에 구속되는 기분.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한계를 잠시 경험한다. 코로나 역학조사를 하는 시스템은 놀랍다. 개인의 자유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것이 얼마나 철저히 추적될 수 있는 것인지 실감한다. 보호받는다는 명분 아래 우리는 한없이 공손하다. 혼밥을 먹을 때 벽은 다정하게 마주 앉기도 한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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