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만 종속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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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섬의 시간’에 전시된 조정환 작가의 작품(안쪽 벽)과 김보경 작가의 작품(바닥), ‘선택시간’에 전시된 김보경 작가의 인조 잔디, ‘허상시간’에서 조정환 작가가 차린 무허가 상담소. 프로젝트 팀 팬시 제공

다대포 홍티마을 빈집, 동대신동 빈 상가, 김해의 빈 공장으로 이사를 하는 전시가 있다.

2020 프로젝트 팀 팬시가 기획한 이동형 전시 ‘리-서발턴(RE-Subaltern);인위선택’이다. 지배계층의 헤게모니에 종속되어 권력이 없는 하층계급을 지칭하는 ‘서발턴’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마을이나 비어 있는 도심 속 빌딩, 외곽지역으로 향하는 이동 전시 형식을 취했다.


프로젝트팀 팬시의 ‘리-서발턴’
빈 공간 세 곳 이사하면서 전시
주어진 상황에서 변하는 삶 등
주류 밖 인물과 공간 의미 찾기
김해 한림 사랑농장서 31일까지

‘리-서발턴;인위선택’은 지난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 사하구 다대동 홍티마을의 빈집에서 첫 번째 전시 ‘선택시간’, 11월 10일부터 30일까지 서구 동대신동 빈 상가에서 두 번째 전시 ‘허상시간’을 개최했다.

그리고 지난 20일부터 경남 김해시 한림면에 위치한 스페이스 사랑농장에서 세 번째 전시 ‘섬의 시간’을 열고 있다. 도시를 배회하며 의미를 찾고 질문을 던진 작가들이 그들만의 고립된 장소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이번 전시에는 김보경, 문지영, 왕덕경, 장오경, 조정환 다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에 앞서 작가들은 리서치 스터디를 했다. 이들은 다양한 키워드를 통합하는 개념으로 ‘리-서발턴’을 들여다봤다. 주류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상식적 경계’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평소 각자가 집중했던 주제에 대한 접근으로 서발턴을 해석하고 풀어냈다. 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문지영 작가는 빈 상가의 창문에 텍스트를 반전한 반투명 시트지를 붙여서 빛이 바뀌는 정도, 글자가 비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왕덕경 작가는 ‘이끼가 자란다’는 작품으로 가부장제 안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해지려 했던 엄마, 급변하는 사회와 정체된 역할에서 충돌하는 엄마를 표현했다. 무용가인 장오경은 구분 짓기에 익숙한 우리의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면 로프를 전시장에 걸고, 면 로프를 이용해 다름 찾기와 같음 찾기를 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세 번으로 나눠 진행된 전시에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신작과 변형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조정환 작가의 경우 첫 전시에서는 홍티마을 빈집이 사람을 밀어내는 느낌을 담아 도심 아래 숨어 있는 생명체들이 꿈틀대며 기어 나오는 작품을 선보였다. 두 번째 전시에서는 상담 자격증이 없는 작가가 직접 무허가 상담소를 차린 상황을 연출했다. 거기서 관람객을 상담하며 느낀 감정을 마지막 김해 전시장에서는 회화 작업으로 이어서 보여줬다.

김보경 작가는 첫 번째 인공 정원 작업을 거쳐 두 번째 전시장에서 선보였던 달그림자 설치작품을 김해에서는 돌밭 위에 돌로 그린 동그라미로 변형시켰다. 김 작가는 프로젝트 팀 팬시를 이끄는 기획자이기도 하다. 김 작가는 “팬시는 화이트 큐브(전형적인 전시공간)에서 전시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 공간을 이사 다니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변해가는 모습, 억지로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역설적으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편 31일까지 이어지는 ‘리-서발턴;인위선택’ 마지막 전시는 오프라인 전시와 함께 온라인 전시로도 진행된다. 페이스북(https;//m.facebook.com/utopiste99)을 비롯해 유튜브, 비메오를 통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오프라인 전시 관람 예약 010-4850-1943.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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