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위주 ‘교양형 예능 프로’…불신만 키운 방송사 검증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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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강사 설민석 씨가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tvN 제공

스타 강사 설민석 씨가 역사 왜곡 논란에 이어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이자 출연 중인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부실한 출연자 검증과 재미 위주의 편집을 우선시한 방송사의 교양형 예능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설 씨는 29일 자신의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이 표절 논란을 빚자 자신의 소셜 미디어(SNS)에 “연구를 게을리하고 다른 논문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 강의와 방송을 믿고 들어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며 출연 중인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의사를 밝혔다.

설 씨는 그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교육 예능인인 ‘에듀테이너’(Edu+entertainer)로 활약해왔다. 이투스·메가스터디 등 유명 온라인 교육업체에서 한국사 강사로 활동한 그는 2012년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이후 SBS ‘영재 발굴단’, tvN ‘어쩌다 어른’, MBC ‘선을 넘는 녀석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등에서 시청자를 만났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설 씨는 교양적 정보를 예능으로 재미있게 알려주는 스토리텔러 역할을 했다”고 말했고,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도 “설 씨의 강의 방식이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에 좋아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설 씨가 자신의 전공인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음악사 등 다른 분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설 씨는 이달 초 ‘벌거벗은 세계사’ 2회인 클레오파트라편 방송 이후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은 방송 내용을 지적하면서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차라리 보지 마라”고 비판했다. 지난 23일엔 음악 평론가인 배순탁 씨에게 지적을 받았다. 배 씨는 설 씨의 유튜브 영상인 ‘노동요에 선덕여왕이 왜 나와’를 언급하며 “‘재즈가 초심을 잃어서 알앤비(R&B)가 탄생했다’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허위사실 유포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설 씨의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이념 논쟁연구’(2010)가 표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의 논문 내용이 2008년 서강대 교육대학원생이 쓴 논문과 50% 이상 같다는 지적에 설 씨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것을 밝혔다.

설 씨의 프로그램 하차로 방송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은 설 씨의 역사 해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편성에 대대적인 차질을 빚게 됐다. 그의 이름을 내세운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방송은 역사 왜곡 지적을 받은 데다 설 씨의 하차 결정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빨간불이 켜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방송사들의 교양형 예능 제작 한계와 편승 전략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지식의 예능화 과정에서 방송사들이 유명 강연자를 앞다퉈 ‘문어발식’으로 내세워 이번 사태를 촉발했다는 지적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세주의와 쏠림 현상에 영합해 이익을 취하는 한국 사회의 병증이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정덕현 평론가는 “2016년 비슷한 문제로 tvN ‘어쩌다 어른’에서 하차한 최진기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며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만 초점을 맞추면 비슷한 사태는 계속 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식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사전검증 시스템을 철저히 해야 한다. 재미를 추구하다 사실 정보가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 평론가도 “시청률을 위해 한 인물을 당대의 지식인으로 포장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행태도 버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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