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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반 커뮤티니 컨텍스트

부산 부산진구 범전동 낡은 주택을 개조한 ‘컨텍스트’의 모임 공간에서 운영진 백원욱, 이장미, 송재웅 씨(왼쪽부터)가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 책을 뒤집어 드는 건 컨텍스트만의 인증 방식이다. 작은 사진은 컨텍스트의 다양한 활동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전자제품을 사는 데는 아낌없이 돈을 써요. 가격만큼 성능이 좋아지니까요. 그런데 독서 모임은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인 데다 한 권 읽는 데 5만 원 가까이 돈을 낸다니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죠.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에요.”(컨텍스트 이용 후기 중)

이 ‘새로운 세상’을 만나려면 도시철도 서면역에서 내려 번화한 골목을 지나고 철로 위 육교를 건너서 담벼락 곳곳에 ‘철거’라고 적힌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와야 한다. 작은 갈림길에서 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컨텍스트’가 있다. 독서 기반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2018년 5월부터 321차례 모임이 열리고 711명이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 곳, 그리고 1991년생 동갑내기 백원욱, 송재웅, 이장미 씨의 일터다.

중·고교 동창 백원욱·송재웅 씨
2018년 9월 의기투합 출발
지난해 동갑내기 이장미 씨 합류
지금까지 321회 711명 함께해

호스트가 주제와 책 4권 정하면
멤버 7~9명 8번 모임 갖는 형식
컨텍스트의 핵심은 ‘경청 문화’

모임 완판돼야 최저시급 월급
“가치 있는 경험에 몰빵하는 것”


■2017년

먼저 공간이 있었다. 범전동의 오래된 2층 주택은 백원욱 씨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이다. 조부모가 세를 주고 있던 집 2층에서 백 씨가 자취를 하게 됐고, 2017년 3월 세입자가 나간 1층을 무작정 공사하기 시작했다. 알바비가 모이면 친구들과 직접 벽지를 뜯고 페인트를 칠했고, 1년 만에 투박하지만 아늑한 공간이 탄생했다.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독서 모임 커뮤니티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8년 9월이다.

처음부터 사업으로 출발했던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 동창인 백원욱 씨와 송재웅 씨는 모범생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직장을 간다고 믿고 경주마처럼 공부했다. 그렇게 나란히 대학생이 됐다가 차례로 자퇴생이 됐다. 배움이 없는 대학, 자격증을 위한 공부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두 사람 모두에게 있었다.

독서 모임은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곳이었다. “둘이 같이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시험을 위한 영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었는데도 ‘책 읽을 시간에 영어공부를 해라, 시 같은 걸 왜 읽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에 거꾸로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책을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었죠.” 송재웅 씨는 기억했다. 백원욱 씨는 “공사를 마치고 보니 지금까지 제일 잘한 일이 독서 모임 운영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친구는 ‘컨텍스트’ 대표가 됐다.

지난해 7월에는 이장미 씨가 합류했다. 웹디자이너였던 이 씨는 그 해 3월 모임 멤버로 처음 컨텍스트를 알게 됐다. “인스타그램에 ‘독서 모임’을 검색해서 컨텍스트 모임 사진을 봤는데 행복해보이더라고요. 그 때 저는 별로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두 시즌을 함께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제가 만족한 서비스니까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퇴사가 겹쳐서 제안을 받아들였죠.”



■2020년

컨텍스트는 4개월 동안 19만 9000원을 내고 한 달에 두 번, 총 8번 만나서 책을 함께 보는 시즌제로 운영된다. 한 모임은 7~9명으로, 모임을 이끄는 호스트나 커넥터, 참가자(멤버)로 구성된다. 호스트가 하나의 주제와 그에 따른 책 네 권을 선정해 정규모임을 개설하면 멤버들이 모임을 선택해서 참가한다. 모임 전에는 반드시 독후감을 써서 내야 한다. 운영진은 호스트의 기획서를 토대로 호스트와 협의해서 모임을 만든다.

유료 독서 모임 사업모델은 새로운 게 아니다. 다른 여러 유료 독서 모임들이 각 분야 전문가와 함께 책을 읽거나 문학이나 경제 등 특정 장르의 책을 읽는 쪽이 많다면 컨텍스트는 호스트가 관심있는 주제를 화두로 삼아서 장르를 떠나서 책을 큐레이션한다. 평균 연령 35세,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인 멤버들의 고민을 반영하다 보니 내면을 들여다보는 사색적인 주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올해 9~12월 시즌에 운영 중인 ‘삶의 속도 교정’에서는 요가, 명상, 차, 습관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한 달의 첫 모임은 관련 책을 읽고 두 번째 모임은 함께 요가를 배우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관련 활동을 했다. 내년 2~5월 시즌에 개설되는 ‘비우며 골라내며 살고 싶다’는 ‘삶이라는 배낭에 무엇을 비우고 채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자기혁명’(가치관), ‘부자의 방’(공간),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몸)과 ‘당신이 옳다’(관계)를 읽는다.

특히 자부하는 것은 모임의 문화다. 멤버들은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고 오롯이 책과 주제를 두고 대화한다. 백원욱 씨는 “처음 오는 분들은 질문하고 경청 ‘당하는’ 경험 자체를 신기해하고 크게 만족한다. 어느 독서모임보다 대화의 질과 밀도가 높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 자체보다도 누구나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문화가 오히려 컨텍스트의 핵심”이라는 게 이장미 씨의 설명이다.

‘실천가들의 밤’이라는 비정기 모임도 만들었다. 멤버라면 누구나 개설하고 정규모임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라는 식의 대화형이나 하루 종일 핸드폰 없이 밥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는 ‘디지털 안식일’ 같은 활동형으로 나뉜다. 독후감을 써야하는 의무감이 없고 일회성이라 멤버들의 호응이 높다.



■2021년

컨텍스트는 올해 정규모임 종류를 다양하게 하고 모임 숫자를 늘리면서 전체 정규모임 멤버 100명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상반기에는 코로나의 충격을 그럭저럭 버텼지만, 9~12월 시즌을 준비하고 있을 때 2차 유행이 터졌다. 120여 명을 모집하고 모임에 탄력이 붙을 때쯤 3차 유행이 시작됐다. 모임이 연기되고 파티 같은 행사가 취소됐다. 환불도 꽤 있었다. 알바를 병행하면서 컨텍스트를 꾸려가던 운영진들에게도 타격이 컸다.

그래도 컨텍스트는 ‘먹고 사는 문제, 그 너머의 이야기’라는 슬로건을 지키면서 멤버들의 ‘가치있는 경험’에 ‘몰빵’하려고 한다. 내년 시즌을 앞두고 좋은 호스트를 뽑기 위해서 호스트와 두세 시간씩 깊은 대화를 나눴고, 이들을 소개하는 16개 정규모임 호스트의 인터뷰 영상을 홈페이지에 미리 공개했다. 온라인 모임도 처음으로 개설한다. 다음 시즌 정규모임이 모두 ‘완판’되면 운영진 세 사람은 그제야 최저시급에 가까운 월급을 받게 된다.

“꿈 속을 걷는 일이 생각보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지만,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으니까요.” 세 사람은 “멤버들이 성공해야 우리도 성공한다고 믿는다”면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www.wecontextyou.co.kr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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