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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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신라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해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19라는 신종 질병의 공격에 인류는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렸으며, 1년이 다 가도록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한 해를 마감하고 있다. 그동안 군사적 안보에만 익숙했던 우리에게 코로나19는 이제 기후, 환경, 에너지 그리고 질병 등에 의한 새로운 안보 위기가 실제로 우리 가까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절감하게 했다.

이러한 심각한 사회적 위기가 닥치면 구성원의 단결된 힘과 함께 특히 더 중요하게 요청되는 것이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도층의 희생과 솔선수범 사례는 수없이 등장했다. 위기 속에서 이들이 보여 주는 태도는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사회의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종 바이러스에 무기력해진 인류
군사 위기 못지않은 질병 위협 인식

14세기 ‘칼레의 시민’ 일화로 보듯
위기에 중요한 건 사회 지도층 역할

코로나 대응 전력 다한 국민에 박수
“우리 모두가 주인·주체” 의식 필요


초기 로마시대 왕과 귀족 등 사회 지도층이 보여 준 높은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정신과 태도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진 이 말은 특히 ‘칼레(Calais)의 시민’ 이야기에서 그 전형적인 모습과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을 통해 잘 알려진 ‘칼레의 시민’ 이야기는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 중 영국군에 의해 포위돼 있던 프랑스의 ‘칼레’라는 도시와 그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내놓았던 시의 최고 부자와 시장 등 지도층 인사에 대한 일화로, 공동체를 위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감과 희생정신의 표본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서구 사회에서 많은 왕족과 귀족이 앞장서서 전쟁에 참여하거나, 부유한 사람들이 사회의 약자를 위해 자선과 후원에 주저하지 않고 나서는 예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러한 예는 너무나 많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국가적 위기의 순간 의병의 맨 앞에 섰던 선비나, 일제 침략에 맞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독립운동가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에 옮긴 수많은 분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은 2020년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을까? 4월 실시된 총선에서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보기 드문 높은 투표율을 나타내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슬기롭게 타개해 나가기를 바라는 국민의 희망이 반영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총선 후 선거법으로 본인이나 선거 관계자가 기소된 국회의원 수가 전체 의원의 1/3이나 된다는 소식은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을 만하였다. 실제 새로 구성된 21대 국회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위기 속에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무책임과 무능을 보여 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서민들의 절규와 끊이지 않는 사회적 약자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유층의 일탈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쌓아 올린 재화의 도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청문회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사들의 자녀 입시를 위한 위장 전입, 편법 스펙 쌓기 등의 도덕 불감증은 이제 지도층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처럼 되어 버렸다. 더 나아가 폭행과 세금 미납 등 도덕의 차원은 고사하고 평범한 시민보다 못한 준법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은 시민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칼레의 지도자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 코로나19 위기는 자신의 영역에서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19 일선에서 분투하는 의료진과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된 이웃을 위해 조그만 나눔이라도 실천하려는 봉사자들, 그리고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걱정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바로 그들이다.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사회적 역량을 집중했던 올 한 해는 ‘누가 진정 사회의 주인인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주인이고,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체라는 깨달음이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얻은 귀중한 선물이었으면 한다. 2020년, 유례없이 힘겨웠던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에게 올 한 해 너무나 고생하셨고, 이 위기를 극복하는 날까지 함께 힘을 내자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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