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하이선 참변’ 20대 유족, 시·북구청 상대 행정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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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채연 씨가 추락해 숨진 사고 현장. 북구의회 김효정 의원 제공

“우리 딸 같은 비극, 더는 없어야죠.”

올 9월 태풍 ‘하이선’이 부산을 덮친 날, 제2만덕터널 인근에서 승용차를 몰다 숨진 20대 여성의 유가족이 부산시와 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에 나섰다. ‘안전시설물 미설치로 인한 인재’라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 여성은 이후 10명에게 장기를 기증하며 새 희망을 안겨주고 떠났다.

폭우 속 만덕터널 인근 차량 추락
운전자 김채연 씨 머리 다쳐 숨져
유족 “가드레일만 있었더라면…
다시는 딸 같은 비극 없길 바라”
구청 뒤늦게 방호 울타리 설치

9월 3일 오전 3시 7분. 부산 북구에 살고 있던 김채연(24) 씨는 승용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제2만덕터널(만덕 방향)을 빠져나온 채연 씨의 차량은 강풍과 쏟아지는 비에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었다. 터널에서 나온 차량은 150m가량을 달리다 5차로에 있던 가로등 점멸기를 들이받은 뒤 4.4m 높이의 굴다리 아래로 떨어졌다. 사고가 벌어진 도로 주변에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채연 씨의 차량이 추락한 지점에만 가드레일이 없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채연 씨는 일주일 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슬픔에 빠진 가족은 평소에 채연 씨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장기 기증을 해달라’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선행을 베풀면 떠나는 채연 씨에게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 가족들은 장기 기증을 선택했다. 그렇게 채연 씨는 10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고 떠났다.

딸을 잃었다는 생각에 채연 씨의 부모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사건을 전방 주시 태만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추락 지점에 가드레일이라도 있었다면 채연 씨가 사망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란 미련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채연 씨의 가족은 지난달 부산시와 북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친오빠 김윤하(26) 씨는 “가족 입장에선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물만 제대로 갖춰져 있었어도 사망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동생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로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채연 씨의 비극에 대해 북구의회에서도 인재라는 질책이 쏟아졌다. 북구의회 김효정 의원(국민의힘)은 “이 사고는 1988년 만덕터널 개통 이후 도로안전시설물을 허술하게 관리해왔다는 방증”이라며 “제대로 가드레일만 설치됐다면 20대 청춘이 사망하는 일은 분명히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사고가 자주 발생하거나 발생 위험이 높은 도로에는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게 돼 있다. 실제로 사고가 난 도로는 최근 3년간(2017~2019년) 그 부근에서만 50여 건에 달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사고 다발지점이다.

북구청은 사고 이후 뒤늦게 추락 지점에 가드레일과 방호벽을 설치했다. 북구청 문창영 도시관리과장은 “사고 지점은 나무, 돌, 전주 등이 있는 곳으로 거기까지는 별도의 보호막이 없었다”며 “사고 이후 가드레일을 다시 설치했고, 추후 방호벽까지 놓았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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