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주관적 감성’ 음악으로 풀어낸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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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나성인

아르놀트 뵈클린의 ‘바이올린을 켜는 죽음과 함께한 자화상’(왼쪽·1872)과 아우구스트 폰 클뢰버가 그린 ‘루트비히 판 베토벤’(1818). 풍월당 제공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는 베토벤 현악 4중주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초·중·후기 3개 시기의 특성과 각 곡에 대한 촘촘한 해설까지 달아놓았다. 베토벤 현악 4중주가 어렵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아르놀트 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통해 새긴 것이지만 과연 음악은 사회사와 사상사의 맥락을 지닌다. 모두 17곡을 남긴 베토벤 현악 4중주에 담긴 사상과 사회사·음악사적 맥락은 녹록찮다. 베토벤을 말할 때 ‘주관적 감정’을 예술에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알아먹기 힘든 현대예술의 모든 혼돈이 베토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것이 또한 베토벤의 현대성이자 위대성이다. 혼돈의 주관적 감성으로 가는 길을 아주 깊게 보여주는 것이 베토벤 현악 4중주다. 전무후무한 베토벤 현악 사중주 17곡은 초기 6곡, 중기 5곡, 후기 6곡으로 나뉜다. 특히 후기 6곡은 베토벤 최후의 걸작 교향곡 9번 ‘합창’ 이후에 만들었다. 완성 이후에 ‘완성 너머’를 품은 곡들이다. 54~55세 때 작곡한 후기 현악 4중주는 57세로 죽기 직전 신 앞에 선 고독자의 내면 음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4중주에 담긴 사상·음악사적 맥락 짚어
총 17곡, 초·중·후기 3개 시기로 분류
시대적 특성과 각 곡에 대한 해설 담아
후기 6곡, 고독자 내면 음성 잘 드러내

특히 현악 4중주 17번 ‘대푸가’는 분열 붕괴 해체를 품은 처절한 음악이다. 절정부에서 4개 악기는 통하지 않는 장광설을 내뿜는다. 그 소리들의 충돌 속에서 처절한 우리 삶이 홀로 외롭게 서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그것이 베토벤의 심정이다. 인간성을 옹호하는 위대한 음악들을 완성한 뒤 베토벤은 다시 홀로 외롭게 돌아와 서 있다. 아들로 여겼던 조카가 베토벤에 반항하며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싫어했던 제수씨도 받아들이게 된다. 삶은 뭔가. 4중주 악기 소리들의 충돌은 우리의 뜨거운 삶을 말하는 듯하고, 곧 우리가 이르게 될 삶의 침묵, 죽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극단적 단절과 해체를 통해 정반대의 응집력과 통합성으로 회귀하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원래 현악 4중주는 하이든(68곡)이 탄생시켰고, 모차르트(23곡)가 깊이를 더했다. 네 악기의 대화가 현악 4중주다. 특히 네 악기의 대화는 새롭게 부상하는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반영한 거라고 한다. 베토벤은 초기 6곡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철저히 흡수한다. 베토벤 시대에 4중주가 확산한 것은 인적인 네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의식이 높은 작곡가, 현악 연주자들, 관대한 후원자, 시민 애호가가 그것이다.

베토벤 초기(28~30세) 6곡의 재기발랄함 속에는 자유 평등의 민주적 이상과 새로운 시대가 들어 있었다. 중기 5곡은 라주모프스키 연작 3곡을 비롯해 36~41세 때 작곡한 것이다. 절정에 달한 당대 시민적 역동성을 표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베토벤은 다른 것을 보게 된다. 1809년 세계정신이라며 고대한 나폴레옹이 빈에 압도했을 때 그는 폭격 소리에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했다. 그후 베토벤은 새로운 시대를 바라보는 영웅주의 드라마 작풍을 걷어치운다. 자명한 것 같았던 세계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악 4중주 ‘하프’ ‘세리오소’에 시간의 단절 같은 그림자가 짙게 깃든다. 저자는 “저무는 한 시대에 대한 씁쓸함과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도사린다”며 그게 11번 현악 4중주 ‘세리오소’에 깔려 있다는 거다.

그리고 13년 뒤에 다시 시작하는 후기는 내면의 깊이를 더한 최종의 6곡을 쏟아낸다. 초기 ‘귀족 살롱의 음악적 대화’에서 중기 ‘시민적 음악 드라마’를 거쳐 이제 후기 ‘내면의 진실한 반영’에 이른 것이다. 저자는 후기를 두고 “초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음악과 삶, 역사를 철저하게 성찰한 결과”라고 말한다. 위대한 인간 드라마를 엮는 것이 아니라 합주의 즐거움, 달관의 마음 위에 묵직한 한 줄의 의미만 있으면 족했다. 이제 ‘예술가 베토벤’은 ‘인간 베토벤’에게 엄숙하게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다. 이제 베토벤은 신 앞에 홀로 서 있었고, 작은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베토벤은 위대한 인간에 대한 드라마를 손에 쥐었다. 그걸 위대한 음악으로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걸 다 놓아버렸다. 아도르노는 이 장면을 두고 “손에 쥔 것을 자유롭게 놓아줌으로써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더욱 높은 진실이 된다”고 했다. 베토벤은 말했다. 그의 후기 현악 4중주는 울부짖으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친구들이여, 박수를 치게나. 희극이 끝났으니!’

풍월당/나성인 지음/415쪽/1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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