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문한 경찰관 신상 공개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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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살인’ 재심 무죄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손을 맞잡고 있다. 부산고법 제1형사부는 이날 열린 재심청구 선고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강선배 기자 ksun@

재판부는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두 남성은 끝내 눈을 질끈 감았다. 고통의 시간이 너무도 길었던 탓일까. 둘은 그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4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법정에서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 선고가 있었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쓰고 옥살이한 세월만 21년. 재심 청구인 최인철(60) 씨와 장동익(63) 씨는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잠깐 서로를 마주 보곤 고개를 떨궜다.

구속 30년 만에 고문 조작 밝혀져
21년 옥살이, 모범수 출소 후 재심
최인철·장동익 씨 잃어 버린 청춘
재판장 “법원 인권보루 역할 못 해”

부산고등법원 형사1부(곽병수 부장판사)는 최 씨와 장 씨의 재심 선고 재판에서 이들에게 적용된 강도살인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선고로 두 사람은 31년 만에 살인범의 누명을 벗었다.

이들은 무기징역을 받고 2013년 모범수로 출소한 뒤 ‘은인’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2017년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2년 뒤 이 사건을 조사한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가 ‘고문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지난해 1월 6일 부산고등법원은 사건의 재심을 개시했다.

지난 1년간의 재심 끝에 밝혀진 31년 전 살인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0년 1월 4일 낙동강변에서 차를 대놓고 데이트하던 남녀가 괴한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고 살아 남았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사건 발생 이후 1년 10개월 뒤 최 씨와 장 씨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이들을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겨자를 섞은 물을 붓는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 살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살인범이 됐다.

최 씨와 장 씨는 검찰과 법원에 여러 차례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강도살인, 강도상해, 강도강간, 특수강도, 감금 등 숱한 강력범죄 혐의만 무더기로 뒤집어썼다.

1992년 부산지법 1심 재판부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했지만 이듬해 1월 열린 2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석 달 뒤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무기징역은 확정됐다.

살인범의 누명 속에서도 질긴 목숨을 이어온 이들은 2013년 모범수로 특별 감형돼 세상 밖으로 나왔다. 누명을 쓰고 수감될 때 2살이던 장 씨의 딸은 24살이 되어있었다.

재심 결정에는 <부산일보> 기사 한 꼭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 사람의 변호를 맡은 박 변호사는 당시 사하경찰서에서 물고문 등 가혹행위가 만연했었다는 증거로 1992년 8월 4일 자 <부산일보> 기사를 제출했다. 특수강도 혐의로 사하경찰서에 연행됐다 무죄 판결을 받은 A 씨가 ‘물고문을 받고 범행을 허위로 자백했다’며 고문 가해자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이를 받아들인 부산고등법원은 재심을 결정했다. 1년간의 재심 끝에 최 씨와 장 씨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곽 부장판사는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며 “재심 판결이 피고인들에게 위로와 명예 회복이 되길 바란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장 씨와 최 씨는 가혹행위로 가짜 살인범을 만든 고문 경찰의 신원 공개를 요구했다. 최 씨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용서하겠느냐. 그 사람들은 악마다. 저를 고문한 경찰관의 신상 공개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한수·곽진석·손혜림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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