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는 인생… 인생을 함부로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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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수 장보윤

트로트 가수 장보윤 씨가 ‘트롯신이 떴다2’ 출연 당시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니가 노래하면 지나가는 멍멍이나 소가 다 웃는다.”

트로트 가수 장보윤이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에게 들은 말이다. 가요계 대선배인 김연자 씨에게 ‘노래 잘한다’고 인정받는 그에게 이게 무슨 소리일까? “제가 집에서, 아빠 앞에서 노래하고 그런 성격이 아니었거든요.” 장보윤이 웃으며 말했다. 장보윤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방송된 SBS ‘트롯신이 떴다2-라스트 찬스’(이하 트롯신)에 출연해 준결승전까지 진출했다.

라디오 방송 개편으로 트로트 전향
처음엔 가사·감성 몰입 안 돼 울기도
부산서 가수 활동한 아버지 조언이 힘
SBS ‘트롯신2’ 준결승전까지 진출
“가수가 목숨 바쳐 힘들게 노래해도
관객은 가볍게 흡수하는 음악하고파”

장보윤의 아버지 장영창 씨는 자신도 가수지만 딸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아버지 장 씨는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부산에서 ‘장영철’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장 씨는 남포동과 서면에 위치한 라이브 살롱에서 7년 동안 활동하다 경주로 옮겨가 레스토랑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 그러다 자신의 팬이었던 장보윤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됐다. 라이브 카페에서 칼국수를 먹으며 견뎌낸 생활, 자신의 딸은 그렇게 힘든 길을 가지 말았으면 했다.

아버지 장 씨는 “보윤이 고등학교 졸업 무렵 자고 일어난 딸의 뒷모습을 보는데 애잔하더라”고 말했다. ‘진짜 가수를 하고 싶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장보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 한 번 해보라는 아버지 앞에서 가수 이선희의 ‘인연’을 열창했다. “보윤이 니는 음악 해도 밥은 안 굶겠다”라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다.

19살 장보윤은 라디오 방송으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포항MBC 가요제 연말결선 왕중왕전에서 대상을 받은 뒤 라디오 프로그램 ‘즐거운 오후 2시’의 ‘랄랄라 콘서트’ 코너에 출연했다. 고정 게스트로 청취자의 신청 곡을 받아서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불러줬다. 7080 음악, 팝, 발라드를 노래하며 이름을 알려가던 그에게 새 운명이 다가왔다. “출연한 지 4년이 넘어섰을 때 담당 PD가 바뀌면서 트로트로 코너가 바뀌었죠.”

트로트와의 만남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음악에 집중하는 성격 탓에 쉽게 트로트 가사나 감성에 젖어 들지 못하는 것이 답답해 울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붐’을 상상 못 한 시절이라 이대로 트로트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도 컸다. 그래도 트로트를 하면 오랫동안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아버지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장보윤은 “지금은 그렇게 말해 준 아버지에게 정말 감사한다”고 전했다. “시대에 맞게, 가사에 맞게 표현하는 것에 대한 심적 부담감은 가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마음을 다해 노래하면 팬분들이 좋아해 주십니다. 팬의 따뜻한 한마디에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고 그것 때문에 한발 한발씩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2014년 1집 앨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를 발표한 장보윤은 가수 출신의 윤수일 누리마루 SI 엔터테인먼트사 대표를 만났다. 2015년 2집 ‘안개비’를 낸 이후 부울경을 중심으로 뛰던 장보윤은 KBS ‘가요무대’ TBC ‘청춘버스킹’ 등 전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3집 ‘사랑인가 봐’를 발매한 2018년, 장보윤은 그해 MBC 가요베스트 대제전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트롯신에 함께 출연한 나상도도 이때 신인상을 같이 받았다.

트롯신은 ‘미스트롯’ 등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2의 트로트 전성기가 왔지만, 막상 현역 신인 가수들의 설 무대가 없다는 점에 착안한 프로그램이다. 남진,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진성, 장윤정이 무명 트로트 가수들의 멘토로 참여했다. 트롯신에서 장보윤은 트롯신 1라운드 1번 주자로 무대에 올랐다.

랜선 심사위원들 앞에서 가장 먼저 노래를 부른 부담감이 크지 않았을까? “저는 장소든 사람이든 항상 저보다 더 크게 봅니다. 제가 아는 것보다 더 큰 무대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면 편안해집니다.” 대범한 대답이다. 대신 리액션이 없는 성격이라 무대 뒤 반응을 따는 카메라 앞에서 타이밍을 맞추기가 좀 어려웠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트롯신 ‘베스트 무대’에 대한 질문에 장보윤은 4라운드 개인 미션에서 부른 ‘그 겨울의 찻집’을 꼽았다. “가사랑 몸의 호흡이 하나로 흡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만약 결승전에 올라가 트롯신 멘토와의 듀엣 무대 기회가 주어졌다면? “김연자 선생님, 남진 선생님과 노래를 해보고 싶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장보윤은 곡의 끝까지 감정을 끌어가는 몰입력이 뛰어나다. 그는 멘토들에게 풍부한 성량과 노래 가사를 완성해 가는 좋은 기질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로트 특유의 ‘간드러짐’을 살리면 더 좋은 가수가 될 것이라는 조언도 들었다. “트로트는 가수가 부를 때는 목숨 바쳐 진짜 힘들게 불러야 하는데, 들으시는 분들에게는 가볍게 흡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과의 소통이 이뤄지죠.”

무대 밖 장보윤은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무대 위 트로트 가수 장보윤은 진중하다는 느낌을 준다. “트로트는 인생이니까요. 섣부르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대중과 뿌리부터 하나가 되어 한 줄기로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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