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통일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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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수려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는 으레 있었다. 바위와 물, 숲에 싸여 소슬한 멋을 한껏 드러낸다. 때론 넓은 연못 한가운데 섬처럼 있을 때도 있다. 평면의 유형은 주로 4각형이 대세였다. 6각형, 8각형도 있다. 드물게 7각형도 지었다. 아(亞) 자형, 부채꼴 모양의 멋스러운 형태도 있다. 건물 반 정도를 연못으로 쑥 내밀어 석주로 받치는 형상은 절묘하다. 눈치챘겠지만, 한국 정자(亭子)에 관한 얘기다. 서울 창덕궁 비원의 부용정, 경복궁 내 향원정, 강원도 강릉의 명암정, 충청북도 영동의 세심정, 전남 화순의 임대정…. 웬만큼 알려진 정자만 해도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정자의 정(亭)은 ‘경치 좋은 곳에 놀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뜻의 글자다. 이규보의 <사륜정기>에는 ‘사방이 탁 트이고 텅 비고 높다랗게 만든 것이 정자’라고 했다. 정자는 한반도 어디에도 있었다. 특히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해 철 따라 변하는 산과 들, 강의 풍경을 즐기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 우리 민족에게 정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또한 각별히 친근했던 곳이었다. 정자는 장소 선택의 의도와 동기, 그리고 그 정자를 즐기던 사람의 마음, 이런 것이 어우러져 우리를 형이상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도 있다. 이렇듯 정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자연환경에 잘 들어맞는 한국적인 건축물이자 공간이었다.

이런 한국적인 공간인 정자가 2015년 독일 베를린에 설치됐다. 한국 정부가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독일 통일의 상징’ 포츠담 광장에 독일 통일 25주년을 기념해 세웠다. 이름하여 ‘통일정’이었다. 서울 창덕궁 낙선재 상량정의 원형을 1대 1 크기로 본 따 만든 6각형 정자로 작지만, 기품이 있어 베를린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한데 베를린시로부터 받은 설치 기간이 만료되면서 최근 포츠담 광장서 3km 떨어진 주독일 한국대사관 뒤뜰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며 이틀간 30시간 가까이 걸린 38t짜리 통일정 이송을 본 베를린 시민들은 “눈부신 구경거리다” “너무 예쁘다” 등의 감탄을 쏟아냈다고 한다.

통일정은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던 자리에 위치해 포츠담 광장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우리 한국의 건축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주독일 한국대사관 뒤뜰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더라도 그 역할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정달식 문화부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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