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작은 마을서 책으로 생계 유지·고군분투하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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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숀 비텔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의 잊힌 땅 ‘위그타운’. 이곳엔 위그타운의 명물인 중고 서점 ‘더 북숍’이 있다. 더 북숍은 책장 길이가 무려 2km, 보유 도서만 해도 10만 권에 달한다. 서점 구석구석 빼곡히 들어찬 책들 가운데는 16세기 가죽 제본 성경에서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초판본까지 없는 게 없다. 마치 애서가들의 천국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게 더 북숍의 전부가 아니다. 서점의 이면은 우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딴 판이다. 더 북숍의 주인이자 이 책의 저자인 숀 비텔이 그 실체를 까발린다. 바로 <서점 일기>를 통해서다.

한때 애서가 천국이었던 명소 ‘더 북숍’
서점 인수 후 겪은 일 회고록 형태 담아

책은 비텔이 2001년 11월 서점을 인수한 뒤 이듬해 2월부터 365일 동안 적어 내려간 일기로 그가 서점을 운영하면서 겪은 일들을 회고록 형태로 풀어냈다.

저자는 “서점 사장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곳 따윈 없다”며 서점에 대한 낭만이나 환상을 깨뜨린다. 그러면서 그 실체를 얘기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서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엉뚱한 손님들의 기상천외한 요청, 제구실하지 못하는 난방 기기,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해 오는 제멋대로인 직원들, 일 년 내내 텅 비어 있는 금전 등록기 등. 저자의 솔직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일기를 읽다 보면 한 번쯤 꿈꿔 봤을 서점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살며시 달아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온라인 시대에, 희귀하고 가치 있는 책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고, 세상 끝 작은 시골 마을의 서점에서 책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일기에서 책에 대한 짙은 애정도 있음을 알게 된다.

‘아마존’이나 ‘도서정가제’ 등을 통해 오늘날 서점 사정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무척 진지하다. 저자는 “아마존이 고객에게는 이득인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서는 책 판매자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조건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저자는 물론 출판사의 수입도 곤두박질쳤다. 즉 출판사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명작가들과 일하지 않으려 하고 이제는 그 둘 사이의 중개인마저 사라졌다”라고 안타까워한다.

이렇듯 고난과 기쁨이 교차하는 서점 주인의 삶 앞에서, 책과 서점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장을 하나둘 넘기며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숀 비텔 지음/김마림 옮김/여름언덕/444쪽/1만 8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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