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보상’ 석면 노동자, 40년 후 ‘추가 배상’도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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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석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가 관련 질병으로 향후 발생 가능한 다른 병 치료비까지 위자료로 받았더라도, 퇴직 후 40년이 지나 발생한 암 또한 회사가 상당 부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미 보상 절차를 거친 석면 노동자에 대한 회사의 추가 배상까지 인정한 진일보한 판결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울산지법 민사15단독 장지혜 부장판사는 전 석면공장 노동자 A 씨가 석면 제품 제조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회사가 6400만 원 상당을 원고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부산 석면공장 8년 근무 노동자
2008년 석면폐증 요양급여 받아
이후 악성종양 발병, 소송 제기
울산지법 “6400만 원 지급하라”

A 씨는 1971년 초부터 1978년 말까지 약 8년간 부산의 한 석면공장에서 근무하다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에 노출됐다. 그는 30년 뒤인 2008년 석면폐증 진단을 받자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 승인받았다. A 씨는 그해 부산지방법원에 “회사 측이 안전을 소홀히 다뤄 질병이 생겼다”며 소송을 걸어 위자료와 치료비 등 4200만 원가량을 지급받았다.

당시 판결에서 ‘A 씨는 폐암, 악성중피종의 발병 소지도 있다’며 ‘향후 치료비를 구하지 않기로 한 점’을 위자료 참작 사유로 열거했다. 그런데 A 씨는 10년쯤 뒤인 2017년 추가로 악성중피종(악성 종양) 진단이 나오자 다시 치료비로 7100만 원 상당을 보상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재차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석면 노동자가 퇴사 후 수십 년이 지나 발생한 추가 질병에 대해 회사와 기존 합의안을 넘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였다.

회사 측 역시 ‘석면폐증 관련 소송 당시 악성중피종 발병 우려를 포함해 치료비와 위자료를 지급했기 때문에 추가 배상은 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A 씨가 2008년 재판에서 악성중피종 발병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이번 소송이 앞선 판결의 기판력에 반한다’고 항변한 것이다. 민사 사건에서 한 번 판결이 선고돼 확정되면 그 내용에 대해 판결과 다른 주장을 할 수 없는데, 이를 기판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앞선 재판에서 A 씨에게 악성중피종이 언제 발생해, 치료 비용이 얼마나 필요할지 감정하지 않았고, 이런 감정이 이뤄졌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며 “A 씨가 (2008년 소송) 당시 향후 발병 우려가 있는 악성중피종에 대한 치료비 청구를 포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악성중피종은 매우 유독한 암으로 기대 수명이 약 1년 전후인데, A 씨가 발병 후 3년 이상 생존해 치료 중으로, (부산지법 소송 과정에서도) 이러한 중대한 손해가 새로 발생하리라고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회사 측은 기판력에 저촉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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