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늘길 막혀 의료품 수급 차질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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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희 필리핀 호산나학교 이사장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해 많은 이들이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하늘길이 막힌다는 건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도 어려워진다는 걸 의미한다. 필리핀 세부섬 다나오 호산나학교 노정희 이사장은 “한국에서 약과 의료용품을 받아 오기가 힘들어져 소극적인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며 “약품들은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나 쓸 것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고 지금의 상황을 토로했다.

지난달 제10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
선교사 헌신에 감명 ‘봉사’ 길 다짐
29년째 의료봉사·학교 운영 ‘뿌듯’

지난달 13일 노 이사장은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의 제10회 ‘이태석 봉사상’을 받았다. 29년간 외진 곳에서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교육사업을 펼친 것이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톤즈에서 했던 일을 많이 닮았다.

노 이사장은 1980년대 경남 함양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가난했던 한국에 와 봉사를 하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특히 여성 선교사 루비 켄드릭의 ‘내게 1000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는 말이 마음을 움직여, 봉사자의 삶을 걷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고신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노 이사장은 1992년 의료 봉사를 위해 필리핀 세부섬 다나오 지역으로 떠났다. 민주화가 안 된 그곳은 빈부격차가 심각했다. 잦은 정전과 단수, 부족한 하수 시설들로 빈곤층의 삶의 질은 너무 열악했다. 의료혜택을 못 받는 이들에게 의료봉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노 이사장은 “다나오 사람들은 세부에서도 거칠고 사납기로 유명하다. 자리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신뢰를 얻고 나니, 식구처럼 아껴주고 보호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자리를 잡고 얼마 뒤 노 이사장은 유치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픈 몸을 치료하는 것 이상으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도 풍족하게 해 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유치원은 어느덧 유치원 2년과 초중고 12년제의 호산나학교로 성장했다.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만 5000여 명에 이른다. 노 이사장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졸업생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레는 순간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코로나19의 파장은 호산나학교까지 영향을 미쳤다. 노 이사장은 의사인 남편과 여전히 오지마을을 찾아 의료봉사를 하는데, 최근 마을의 집을 정리하고 학교 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집세라도 아껴 학교 직원들의 급여를 챙길 정도로 재정 압박이 크다. 코로나19로 의료품 수급과 의료 봉사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요즘 그는 코로나19를 자주 원망한다고 한다.

힘든 시기지만 노 이사장은 간호대학을 설립해 더 많은 이를 돕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있다. 노 이사장은 “최근 의료 봉사에서 앞니가 빠진 학생들에게 의치를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도움으로 누군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봉사자로서의 꿈을 놓지 않는 힘인 듯하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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