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함’, 우리 사회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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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눈앞의 이익 때문에 방역 수칙을 무시하는 사람들, 봉쇄된 도시에서 약탈 범죄를 일삼는 해외의 성난 군중들…. 우리는 매일같이 끔찍한 폭력과 인간의 이기로 가득 찬 뉴스를 접한다. 이것만 놓고 보면 인간의 본성이 본래 이기적인 게 아니냐는 생각을 품게 된다. 일찍이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면, 세상이 어찌 이 모양일까”라며 “어린아이들이 과자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가 먹겠다고 다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2차 세계대전, 타이태닉호 침몰 등서
사람들, 죽음 불사하며 타인·약자 도와
사회 시스템 등이 부정·비관적 인간 낳아
선한 인식 되찾아야 인류 연대·협력 얻어

마스크 파동에 대한 보도가 한창이던 2020년 한국에서는 ‘사랑의 열매’ 모금액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각종 구호 물결이 이어졌다. 1963년 이래 700여 건의 재난 현장을 연구한 결과(델라웨어대학 재난연구센터, 2006)에 따르면 놀랍게도 재난 시 살인, 강도, 강간 등의 범죄율은 감소하고 나눔과 분배를 실천하는 이타주의적 행태가 증가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물에 빠진 아이를 보았을 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구해주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진 선의 본성이다”라고 했다.

과연 어느 모습이 인간의 본성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 주목받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인 뤼트허르 브레흐만(네덜란드)은 이 논쟁을 단칼에 끝내고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맹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는 <휴먼카인드>에서 인류의 보편적 속성, 즉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한다. 또 그 선한 본성을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 선함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먼저 저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증거를 쑥 내민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타이태닉호 침몰, 911 테러 등에서 어김없이 사람들은 죽음을 불사하며 타인과 약자를 도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위기의 순간에 ‘군중심리’와 공황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본성’에 압도당한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요컨대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인 1914년의 ‘크리스마스의 평화’(휴전)가 대표적이다. 당시 독일군과 마주하고 있던 영국 전선의 3분의 2가 크리스마스날 전투를 중단했다. 그것도 대부분 독일군의 제의에 의해서였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평화’는 스페인 내전, 남아프리카의 보어전쟁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은 선한 본성이 있지만, 우리의 정치 경제적 시스템과 지식, 세계관 등이 모두 인간에 대한 냉소적·부정적·비관적 견해를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인식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불평등과 혐오, 불신과 같은 모든 비극의 기원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방대한 사료와 함께 인간의 선한 본성에 관한 여러 증거를 발굴해낸다. 이를테면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다. 이 실험의 실체는 우리가 심리학 교과서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심리학에서는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맡은 18명의 학생이 교도소라는 부정적 환경을 만나면 가혹행위를 저지르고 히스테릭에 빠지는 등 비인간적으로 돌변하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스탠퍼드대 짐바르도 기록보관소의 각종 기록과 녹취자료는 교수가 실험 대상 학생들에게 실험 의도에 맞게 이끌어가는 ‘요구 특성’이 이 실험에서 노골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그린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반박하기 위해 저자는 실제 소설과 반대되는 사례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1965년 폴리네시아 통가의 무인도 아타섬에 15개월간 고립된 6명의 소년은 소설처럼 서로 다투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에 필요한 것을 두루 갖추고 평화롭고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다’라는 큰 틀에 빠져 있을 때, 그들 스스로 권력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인식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한 연대와 협력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게 불평등과 혐오, 불신의 덫에 빠진 인류가 위기를 구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하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통념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통찰의 죽비’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조현욱 옮김/인플루엔셜/588쪽/2만 2000원.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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